“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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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 조지훈, <승무> 中”
국제 슬로시티로 지정된 청송을 가장 잘 보여주는 외씨버선길. 갸름하고 맵시가 있는 버선처럼 생긴 길은 영양, 봉화, 영월, 청송에 걸쳐있다. ‘지질명소’나 ‘산소카페’처럼 청송을 수식하는 말은 많지만 이날은 이 길을 따라 ‘슬로시티, 청송’을 찾아나섰다. 느릿느릿한 걸음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삶의 작은 조각들을 찾아가는 여행. 청송에는 벚꽃엔딩을 맞이했던 초록의 계절에서 분홍빛 설레는 풍경을 흩날렸고 역사와 전설이 흐르는 공간에서는 발길을 멈추게 만드는 화려한 야경이 있다.
[청송 벚꽃 터널]
나만 알고 싶은 슬로시티길 (외씨버선길 2길)
전국에서 가장 벚꽃이 늦게 핀다는 전북 진안 마이산에도 벚꽃엔딩이 찾아왔던 시기에 청송에서 풍성한 벚꽃터널을 봤다. 멀리서도 분홍빛 띠를 만들어내는 봄 풍경이 달리는 차의 창문을 넘어들어왔다. 설레는 마음에 시동을 걸고 느림 속에서 화려한 벚꽃터널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외씨버선길은 영양에서 태어난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 나오는 단어다. 애벌레가 나비로 성장하는 몸짓을 나빌레라로 표현하며 그려낸 시는 다시봐도 예술이다. 승무는 아무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외로운 길 위에서 성장하는 나를 예술로 승화시킨 춤이다.
청송의 슬로시티길은 약 10.5km로 사부작 걸어가면 약 5시간정도 걸린다. 차로 가면 금방이지만 천천히 걸어가며 이름 모를 들꽃에도 이름을 물어볼 시간까지 가져보는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외씨버선길 청송객주(안내센터) : 운봉관 앞
주소 : 경북 청송군 청송읍 금월로 269
문의 : 054-872-0116
외씨버선길 안내 사이트
http://www.beosun.com/pages/s2_intr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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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벚꽃 명소를 검색해보기도 했지만 평소에 청송을 찾아갈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다. 의외로 새롭고 이렇게 숨은 벚꽃터널까지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데 말이다. 북적거리는 벚꽃거리가 아니라 전세내고 뛰어다닐 수 있는 꽃길이 어디 흔하랴.
파천면 사무소에서 징검다리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만난 뜻밖의 풍경. 따스한 봄날의 기운에 내딛는 발에도 한껏 들뜬 기운이 느껴진다. 푸른 강물과 한적한 벚꽃터널이 만나는 이 길 위에서 나홀로 잔잔한 감성에 젖어들었다.
양쪽의 벚나무가 포근히 감싸안은 흙길에서 봄을 만끽하는 아이와 부모의 얼굴에도 벚꽃을 만난 반가움이 묻어났다. 유모차를 끌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완만하고 소담한 풍경이 이어지니 가족나들이 나오기도 좋다. 꽃이 피는 곳에는 사람 소리가 끊이지않는데 자연의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나만 알고 싶은 벚꽃 명당이 틀림없다.
주소: 경북 청송군 파천면 관리 576-5
[중평솔밭]
울창한 솔숲 쉼터 속 여유
중평리 입구에 자리 잡은 3천여평의 소나무군락지를 볼 수 있는 중평솔밭. 예전엔 야영장으로 캠핑이나 피크닉 나온 사람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으나 현재는 파크골프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한참을 위로 올려다봐야 키가 가늠이 갈 만큼 울창한 소나무 100여 그루가 자연 그늘을 만들어주는 곳. 가만히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은 그런 솔밭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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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을 떠올리면 산소카페와 푸른 소나무가 연상되는 그 풍경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 바로 앞 냇가에 맑은 물소리가 들려오고 그 길을 따라 평산신씨판사공파종택, 서벽고택, 사남고택 등 전통의 흐름이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다 봄이 만들어내는 교향곡에 발걸음이 절로 멈춘다.
200살이 넘은 소나무들이 외씨버선길 위에 살아있다. 이제는 단순히 그늘만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지키고 여유를 즐기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목계솔밭보다는 개체 수는 적지만 새로운 휴식공간으로 산소카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주소 : 경북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 34-1
[덕천마을 송소고택]
벚꽃 핀 고택에서 느끼는 편안한 정취
유교 문화의 전통을 이어오면서 ‘국내 농어촌관광명소 20‘에 선정되기도 한 덕천마을. 국제슬로시티 총회에서 국내 9번째, 경북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결정타에는 송소고택을 비롯해서 벽절정, 소류정, 학산정 등 고택의 역할이 컸다. 고택이 주는 고즈넉한 정취와 뉘엿뉘엿 흘러가는 용전천의 걸음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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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부터 두 눈을 사로잡는 덕천마을의 벚꽃터널. 내년에도 청송에서 벚꽃을 맞이하고 싶어진다. 하천을 따라 벚꽃길이 이어지는 슬로시티 청송의 봄.
환상적인 벚꽃터널의 빽빽함 속에는 다른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만개한 꽃들 사이에서 그저 느리게 횡보하는 걸음만이 활짝 피어있을 뿐.
망울이 비눗방울처럼 몽실몽실 피어오른 덕천마을의 봄. 마음 한켠을 내어주고 싶을 만큼 예쁘게 내려온 꽃줄기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세월의 흐름 속에 전통을 간직한 고택이 배경이 되어주고 꽃잎이 살랑살랑 춤을 추는 기분. 중력을 거스르는 낭만의 날개짓이 봄날을 날아오른다. 나비가 되어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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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감상에 빠져도 예로부터 청송 심부자 집으로 유명한 송소고택은 잊지않고 들러봐야 한다. 현존하는 국내 99칸 전통 한옥 중에서도 보존과 관리가 잘 되어 숙박체험까지 할 수 있는 곳이다.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 250호로 선조들의 삶의 흔적과 정신이 흐른다. 자꾸만 머무르며 사색하고 싶은 송소고택은 분명 매력적이다.
주소 :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소고택길 15-2
[카페 백일홍]
사진 찍기 좋은 공유 화보 촬영지
송소고택 바로 옆에는 사람들이 늘 붐비는 카페가 하나 있다. 배우 공유가 화보를 찍었다는 카페 백일홍. 툇마루를 의자로 활용한 인테리어와 한옥에 꽃이 피어난 인테리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도자기 공예가인 대표가 만든 작품을 구경하는 소소한 재미까지 더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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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담 너머 보이던 한지 조명이 주는 따스함에서 쉬어가기도 좋다. 단순히 청송의 사진찍기 좋은 카페로만 보이는게 아니라 정성으로 쌓아올린 주인의 마음까지 넉넉히 느껴진다.
직접 만들어내는 수제 생강 음료로 먼지로 까끌해진 목을 씻어내렸다. 외씨버선길을 다니며 목이 말랐다면 시원한 차 한잔의 여유를 맘껏 즐길 수 있는 청송카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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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마을 입구의 벚꽃터널도 좋지만 송소고택을 나와서 뚝방길을 따라 난 벚꽃도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기 좋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자연의 순서를 느끼고 나를 채워가는 시간을 가지기 좋은 곳이 곳곳에 스며들어가 있는 덕천마을. 특별히 뭔가를 하지않아도 마음에 꽃이 피어나는 봄날이었다.
주소 :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소고택길 21
[소헌공원, 현비암]
낮에는 벚꽃이, 밤에는 불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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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헌왕후의 이름을 따서 만든 공원에도 돌고 돌아 또 봄이 피어났다. 용전천을 바라보는 야트막한 언덕에 만들어진 단촐한 사적공원.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의 이름은 붙은 사연이 있다. 태종이 외척 정치를 경계하여 소헌왕후의 친정 식구를 처단한후 세종이 그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객사와 누각을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소헌왕후 심씨 같은 어진 왕비가 태어났다고 해서 이름 지은 20m에 달하는 기암괴석 절벽인 현비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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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경루에 들어가서 용전천과 현비암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슬로시티 청송의 매력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외씨버선길의 시점인 소헌공원 근처에는 오일장(4일, 9일)인 청송전통시장이 먹거리와 볼거리까지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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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어려도 봄을 열렬히 보여주는 벚나무들이 섶다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이 제법 인상적이다. 영월에나 있는 줄 알았던 섶다리가 시간을 거슬러 지금도 눈앞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현비암 앞에 섶다리가 시골 정취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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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과의 고장 청송을 잘 보여주는 조형물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잡았다. 용전천 위 다리에도 얼음골 사과가 주렁주렁. 일교차가 큰 덕분에 꿀 사과가 유명하다. 귀여운 난쟁이와 탐스러운 사과 와 미인 모형의 조명도 청송만의 색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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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강수욕장으로 인기가 많은 곳으로 낮에는 눈꽃처럼 예쁜 벚꽃이 아름답고 밤에는 야간조명으로 불꽃이 화려하게 수놓아지는 소헌공헌 앞 용전천의 풍경! 마치 반전매력을 보는 것처럼 조명 색이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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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에서 상상도 못했던 색색의 야경을 보니 청송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지는 걸 느꼈다. 농촌의 깜깜하고 어두운 밤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밤에도 볼거리가 있는 풍경으로 볼거리가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소헌공원에서 신거리느티나무까지 이날은 다 걸어보지 못했지만 둘러본 모든 곳이 외씨버선길이었다. 머릿 속이 복잡할 때 나를 내려놓고 다시 채우기 위한 발걸음. 일상을 떠나 한 발씩 내딛어보면 길을 걷는 이유가 보인다. 조금은 더 느리고 더디게 진행된 청송의 봄 덕분에 끝난 줄 알았던 벚꽃여행도 다니고 해가 저물어도 혼자여행하기 좋은 경북의 소도시였다. 의외의 벚꽃 맛집과 야경 맛집! 걸을 준비가 되었다면 봄날엔 벚꽃 흩날리는 외씨버선길을 거닐며 마음 챙김까지 해보자.
소헌공원 주소 : 경북 청송군 청송읍 금월로 269
현비암 주소 : 경북 청송군 청송읍 덕리
Info. 청송 외씨번선길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월로 269
Info. 중평솔밭
경상북도 청송군 중평리 34-1
Info. 덕천마을 송소고택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소고택길 15-2
Info. 카페 백일홍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소고택길 21
Info. 소헌공원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월로 269
Info. 현비안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