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성류굴
여행자 입장에서 내 터전 충북은 한반도의 가운데에 위치한 이유로 전국 어디든 최대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게 장점으로 꼽힐 때가 많다. 하지만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의 생활 터전이란 이유로 사회 전반적으로 굳혀진 수도권 중심 사고는, 충북에 살며 여행 일정의 시작과 끝을 보통 충북에서 맺는 내게까지 닿고 있다는 걸 실감할 때가 은근히 잦다. 그것은 어느 여행지로 닿는 여정을 "서울에서 ~시간 소요된다" 식으로 표현되는데, "서울에서 출발하면 정말 이만큼 걸릴까?" 하고 문득 든 의문을 체감으로 풀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그 호기심 기반의 도전 의지는 오늘 다룰 울진 여행의 전날 밤 날 서울로 이끌었고, 다음날 새벽부터 편도 다섯 시간에 달하는 대장정을 여는 것으로 그 결실을 맺었다. 한편 보통처럼 집에서 출발했다면 울진의 남쪽 관문 후포항을 통해 울진 여행이 시작되었겠지만, 이번엔 강원도 삼척과 인접한 북쪽 관문 죽변항이 나와 가장 먼저 마주친 것부터 은근히 신선했다.
▲드라마[폭풍속으로]세트장과 죽변항 풍경
▲울진 제일반점 비빔짬뽕밥과 탕수육
쉼없이 부지런히 달리면 네 시간 정도 걸린다는 지도 어플의 안내를 받잡아 내가 택한 울진 여행 출발시간은 오전 5시, 출근길 행렬이 막 열린듯한 그때 도로 풍경과 분위기는 퇴근 피크시간 직후와 꼭 닮아 보였다. 그렇게 경부, 영동, 동해고속도로를 통해 삼척 근덕 TG까진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고, 이후 50km는 동해안 7번 국도가 뽐낸 특유의 낭만을 즐기다 보니 점심때 가까워질 무렵 울진의 북쪽 관문인 죽변항에 들어섰다. 폭풍속으로 세트장으로 명명된 하트해변이 명소로 알려진 죽변항은 동해안의 손꼽히는 어로 기지인데, 특히 독도와 가장 가까운 내륙으로 그 거리는 216.8km다. 한편 죽변항을 이번 울진 여행의 관문으로 삼게 되었으니 드라마 [폭풍속으로] 세트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다가갔다. 몇 해 전 처음 방문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별도로 마련된 주차장이 우선 마음에 쏙 들었으나, 하트해변을 지날 예정인 죽변스카이모노레일의 모습은 본연의 멋을 분명하게 해친 것 같아 무척 아쉬웠다. 울진 죽변항과 후정해수욕장 간 왕복 4.8km 규모로 조성된 죽변스카이모노레일은 작년 10월부터 운행되기로 했으나, 코로나19 상황 때문인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바다 위 철길만 덩그러니 세워져있다. 변화를 맞이한 하트해변의 현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실제로 대해보니 안 그래도 격렬했던 배고픔의 강도는 한층 더해져 울진에서의 첫 끼로 삼은 제일반점으로 얼른 향했다. 제일반점의 대표 메뉴는 비빔짬뽕으로써 밥과 면 중 한 가지를 택해 즐기게 된다. 대구의 중화비빔밥과 비슷하다는 소문에 따라 나 역시 밥으로 비빔짬뽕을 대했는데, 적절한 수준의 불 맛 덕분에 맛있게 맵다. 또 제일반점이 인상적이었던 이유엔 셀프 방식도 한몫했다. 주인장은 주문받은 음식만 잘 만들어낼 뿐, 다른 모든 건 손님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울진 구수곡자연휴양림 숲속의 집
편도 네 시간 이상 되는 서울에서 울진까지의 여정이 만만치 않음을 미리 염두 했고, 실제 고속도로 휴게소를 두 차례나 이용할 정도로 그러했으니 숙소인 구수곡자연휴양림에 입실 시작 시간 맞춰 들어선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덕구온천 권역에 속하는 구수곡자연휴양림은 국내 최대 금강송숲길을 품고 있는 울진의 파릇한 면모를 경험해보기 위해 택했는데, 평일가로 8만원에 6명까지 함께 쓸 수 있는 황토방을 숲속의 집 객실로 배정받아 기대했던 숲캉스 효과를 제대로 누렸다. 숲속의 집은 사방이 길쭉한 소나무들로 둘러싸여 과연 숨 쉴 맛났고, 황토방이 내뿜는 온기 듬뿍 건강함은 등부터 시작해 긴 여정에 지친 전신을 제대로 달래주었다. 한편 구수곡자연휴양림 내엔 취사 공간이 따로 마련되지 않아, 객실에서 간단한 조리를 통해 숲캉스의 맛(味)이 실현된다. 이때 흔히 떠올리는 메뉴가 바로 돼지, 소고기 구이일 텐데 객실에 마련된 프라이팬을 쓰거나, 집에서 가스버너를 챙기면 그 어느 때보다 맛깔나는 한 끼로 꾸며질 것이다.
▲울진 성류굴
울진 여행 지도는 동해안 해안도로를 따라 크게 후포, 읍내&금강송, 죽변 권역으로 구분된다. 이번에 처음 발길 닿은 울진 성류굴은 뒤에 이어질 왕피천케이블카와 함께 읍내권 울진 가볼만한곳이다. 2억 5천만 년이란 장구한 지질 역사를 통해 형성된 울진 성류굴은 기이한 모습의 석순과 종유석이 약 500m인 탐방코스 내내 펼쳐져, 천연기념물 155호 그리고 지하의 금강산으로 붙은 타이틀을 실감할 수 있다. 한편 국내 관광동굴 1호로의 근거는 국내 최초의 동굴답사기로 울진 성류굴을 다룬 고려 말기 학자 이곡이 쓴 관동유기에서 드러난다. 또한 지금의 신비로우면서 아름다운 동굴미에 감춰진 슬픈 역사도 있다. 임진왜란 때 인근 주민들이 왜군을 피해 성류굴에 은신했으나, 이를 안 왜군이 입구를 막아버려 500여 명이 굶어죽은 게 바로 그것이다. 전체 길이가 약 870m인 울진 성류굴 중 대중에 개방된 건 총 12광장으로 구성된 472m, 속속들이 임해도 1시간 20분 정도면 동굴 탐방이 완벽하게 꾸며진다.
▲왕피천케이블카
▲망양정해맞이광장
울진의 젖줄 왕피천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과 울진군 온정면에 걸쳐 있는 금장산에서 발원해 동해로 흐른다. 왕피천의 60.95km 대장정이 동해와 합쳐지며 끝날 무렵, 담수로의 마지막을 확인하는 방법이 울진 왕피천공원~망양정해맞이광장 간 715m 하늘길에 있다. 이 715m의 주인공은 작년 7월에 개장한 왕피천케이블카인데, 이전엔 별개의 울진 가볼만한곳으로 여겨졌던 왕피천공원과 관동팔경 중 6경인 망양정해맞이광장을 연결된 하나의 공간으로 이끌어낸 의미가 눈부신다. 왕피천케이블카의 두 시종점 간 찻길 거리가 2km 정도이므로 왕피천공원에서 망양정해맞이광장 구간만 케이블카로 이동 후 돌아가는 여정은 왕피천변을 걸어 누비는 것도 괜찮지만, 왕복으로 이용해서 여행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게 좋다. 한편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중 제일이라 하여 조선 숙종 때 울진 망양정엔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란 현판이 내려졌고, 강원도 관찰사 시절 관동별곡을 집필한 송강 정철 역시 망양정의 절경을 언급하였다.
▲망양정
▲평해사구습지생태공원
금강송과 동해로 일궈진 울진의 자연미를 모두 챙겨 볼 수 있는 울진 가볼만한곳이 동해안 해안도로 주행 중 월송정으로 마주치게 된다. 관동팔경 중 마지막 8경인 월송정은 비 온 뒤 떠오른 맑은 달빛이 소나무 그늘에 비칠 때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고 한다. 신라의 네 화랑과 관련된 이야기와 달리 이곳은 고려 때 처음 세워졌는데, 풍류를 위한 누각이 아닌 왜구의 침입을 살피는 망루로 쓰였다. 한국원자력고등학교 부근의 입구엔 바닷바람이 잘 키워낸 푸른 해송과 흰 벚꽃, 월송정에서 바라보는 송림과 바다의 조화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또한 월송정, 구산해수욕장, 평해사구습지생태공원을 아우르는 코스는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는 산책로로써, 숲과 바다를 두루 챙겨 보고 싶은 이들에겐 최고의 만족을 선사할 것이다.
▲등기산공원
▲등기산 스카이워크
울진의 남쪽 관문 후포항은 경북 영덕과 인접해 대게 맛 좋기로 알려졌다. 코로나19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취소된 울진대게축제 장소이기도 한데, 대게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 입장에선 울릉도 배편을 이용할 수 있는 항구로의 의미가 돋보인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울릉도 여행에 나설 수 있게 된다면 편도 2시간 20분 정도로 최단 코스라는 후포항을 택할 것이다. 한편 요즘엔 울릉도 배편 이용뿐만 아니라 언택트 여행지로 각광받게 된 등기산 스카이워크&공원을 찾는 발걸음이 활발해지고 있다. 세계 유명 등대 모형 공원과 바다 위로 뻗은 스카이워크는 한 번의 행보로 다른 분위기의 인생샷을 챙길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이끈다.
Info. 울진 성류굴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성류굴로 221
Info. 등기산 스카이워크
I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 산141-21
Info. 평해사구습지 생태공원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319-2
Info. 망양정해맞이광장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664
Info. 왕피천케이블카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엑스포로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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