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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마음이 가벼워지는 맛집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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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가벼워지는 경주 맛집 나들이
     
     

    여행하기가 참 망설여집니다.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하고 어디론가 다니려니 불안합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여행이 떠났다’고도 합니다. 아니 떠나려고 한답니다. 여행이 우리 곁에서 떠난다면 얼마나 우울하고 감정이 메말라질까요. 나는 여행을 떠나보낼 수 없습니다. 아니, 떠나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도 내 가슴 깊은 곳에 깃들어있는 방랑벽은 나를 밖으로 불러내었습니다.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같은 장소를 여행 하더라도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고 하듯이 어디에서 어떤 음식을 먹고 무엇을 생각했느냐에 따라 그 기억이 오래 남으며 또 가고 싶은 여행지가 되기도 합니다. 풍광도 멋있으며 맛도 좋은 음식점이라면 금상첨화겠지요. 신라 천년의 수도였던 경주 맛 집을 다녀왔습니다.

       옛이야기를 품은 외가 같은 자닮소

     ‘자연을 닮은 소박한 집’이라는 뜻입니다. 경주시 천북면 동산1리 마을 회관 앞에 오래 된 집이 있었습니다. 기왓장이 올려 진 나지막한 돌담장에 포근히 안긴 듯한 빨간 지붕 집, 뛰어나게 예쁘지도 않고, 세련되게 보이지도 않지만 길손의 발길을 머물게 하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마을회관 앞에 주차를 하고 높이가 적당한 장승이 퉁방울눈으로 활짝 웃으며 나그네를 불렀습니다. 대문 없는 마당을 조심스레 들어갔습니다. 유리창에 레이스처럼 드리워진 포도넝쿨이 바람에 일렁거렸습니다.

    ▲ 장승이 반기는 입구


    ▲ 엄나무와 자닮카페


    ▲ 자귀나무와 빨간 지붕

    빛바랜 LP판과 두툼한 선풍기 옆 나무의자 위에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하여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을 합시다.’라고 적은 메모판과 손소독제가 놓여있었습니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 전 국민이 마스크를 착용하며 생활해야 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이를 어긴 이유로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공공장소에는 입구에서 체온을 측정하고 개인정보를 기록해야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곳은 아예 출입문을 굳게 닫고 사람의 왕래를 막기도 합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옛집의 구조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실내정원과 식탁, 휘어진 나무기둥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렸습니다. 아기자기한 장식과 오래된 집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했습니다. 실내에서 포도넝쿨이 유리창 밖 정원으로 손을 뻗으며 싱싱하게 자랍니다. 집밖의 정원을 집안으로 들여다 놓은 것 같았습니다. 안과 밖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식물을 기르는 주인의 정성이 느껴졌습니다.

    ▲ 실내정원

    댓돌로 변신한 빨래다듬이 돌 위에 얹혀있는 검정고무신과 흰 고무신이 다정스러웠습니다. 흙담 옆에 기댄 기왓장은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라며 낮은 목소리로 혼자서 되뇌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자닮소’의 집도, 마당도, 화초들도, 나무들도, 사람들도 모두 익어가는 중입니다. 뾰족한 것들이 둥글어지고, 반짝거리던 것들은 깊은 빛을 자아냅니다. 마치 외가에 온 것 같은, 외할머니께서 나지막한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오시며 나를 반가이 맞이해 주실 것 같았습니다.


     ▲ 장독대와 정원 (좌) / 평상이 있는 정원 (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정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증조부 때부터 살아온 옛집을 손질하여 숙박시설과 카페로 활용합니다. 다양한 장식품들은 대부분 주인님이 직접 만든 것들입니다. 낡아 버려지는 것들도 마법사 같은 주인님의 손길을 거치고 나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작품이 됩니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마당과 실내를 아름답게 합니다. 옛집을 완전히 헐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집을 활용하기 때문에 한참동안 방에 앉아있으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전래동화속의 주인공이 되는 듯했습니다. 수수께끼 같은 집에서 술래처럼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장독대 뒤에서 돌담 너머에서 대숲에서 마루 밑에서 벽장 안에서 코흘리개 적 동무들이 꼭꼭 숨어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연꽃 핀 연못과 정원  (좌) /펌프와 재봉틀의 변신 (우)


    ▲ 자연을 닮은 주인님 (좌) / 안채 모습 (우)

    큼지막한 접시에 담긴 음식이 예술작품 같았습니다. 마늘과 어우러진 소스가 듬뿍한 돈가스와 고소하고 아삭한 야채샐러드, 꽃잎 같은 빨간 사과, 공처럼 동그란 찰밥, 그리고 잘 익은 김치와 콩나물장아찌가 밥상을 장식했습니다. 먼저 눈으로 감상 한 다음 젓가락을 들었습니다. 할머니의 손맛과 젊은 며느리의 손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콩나물장아찌는 처음 맛보는 음식입니다. 콩나물의 아삭함과 새콤달콤하면서 맵싸한 식감은 일품이었습니다. 먹어보아야만 그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글이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된장찌개’와 ‘마늘 돈가스’가 주된 요리이지만 ‘서리태 콩국수’는 여름의 별미로 인기가 높습니다.

    ▲ 마늘돈가스와 실내정원


                ▲ 마늘돈가스 (좌) / 콩나물장아찌 (우)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지나간 흔적이 뚜렷했지만 바지런한 주인님의 손길로 상처가 아무는 중이었습니다. 마당에는 백일홍과 맨드라미, 그리고 봉선화가 있는 장독대도 소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돌담을 안고 고요히 미소 짓는 노을빛 능소화가 환했습니다. 높지 아니하고, 거대하지 아니하고, 화려하지 아니하여 더 마음이 포근해지는 자연을 닮은 소박한 집, 문학과 예술이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넓고 깊고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누구라도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원하는 주인장님의 마음도 자연을 무척 닮았습니다.

    Info. 자닮소
    주소 : 경주시 천북면 동산리 186
    전화 : 010-6376-1277
    쉬는 날 : 매주 목요일

     

       야생화가 아름다운 쑥부쟁이

    보문단지에서 불국사로 가는 길에 있는 맛 집입니다. 소나무와 자잘한 야생초들이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 쑥부쟁이 전경

    실내도 아주 단정했습니다. 창가 방에 앉아 ‘연잎 밥 정식’을 주문했습니다. 싱싱한 채소를 주재료로 하여 정성이 듬뿍 담긴 밥상이었습니다. 먼저 화려한 야채샐러드가 입맛을 돋우었습니다. 다음으로 연두부와 현미로 만든 부드러운 호박죽, 감자전과 부추가래떡을 겸한 두부가 그림처럼 예뻤습니다. 연근과 버섯이 어우러진 잡채, 들깨가 진한 버섯탕의 고소함과 바싹거림이 입안에 가득했습니다. 연잎에 싸인 밥과 된장, 갖은 반찬들이 정갈하게 차려졌고, 후식으로 나온 과일과 호박식혜가 상큼했습니다.


    ▲ 부추가래떡과 두부 (좌) / 연잎 밥 (중) /  호박식혜 (우)

    창밖을 내다보면 멀리 남산자락과 창문너머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벼와 마을의 풍광이 고요했습니다. 쑥부쟁이를 닮은 자잘한 야생초들과 인형들이 다정하게 어울리는 집이었습니다. 몸에 이로운 쑥부쟁이처럼 한 끼를 먹고 나니 원기가 회복되는 것 같아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 멀리 남산과 창밖풍경

    Info. 쑥부쟁이
    주소 : 경주시 보불로 147-5(하동)
    전화 : 054) 748-8879, 3903
    주변 관광지 : 신라역사과학관, 불국사, 석굴암

       호수가 아름다운 카페 PAGE9

    1972년부터 개발된 아름다운 보문호수를 중심으로 전망이 좋은 찻집이나 맛 집이 즐비합니다. 벚꽃이 만발한 봄날과 녹음이 짙은 여름,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 그리고 나목으로 고요한 겨울, 계절마다 다른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곳입니다. 특히 달빛이 일렁이는 호숫가를 걸으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 잔디밭에서 독서하는 사람들

    책을 읽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호수가 보이는 잔디밭에 독서하는 조각상들이 아름다웠습니다. 책을 읽는 모습도 다양합니다. 잔디밭에 엎드려서 보기도 하고, 높이 쌓은 책 위에 앉아서도 책을 보고, 나무그늘 아래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도 봅니다. 때로는 음악을 들으며 때로는 읽던 책을 손에 펼친 채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기도 합니다. 평화와 자유가 충만했습니다. 

    ▲ 페이지 전경

    코로나로 인해 사람 만나기를 조심해야 하는 시기에는 책읽기 딱 좋은 시간들입니다. 정말이지 책은 많고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가방에서 내가 가진 책을 꺼내어 9쪽을 펼쳤습니다. 목차가 가지런히 나를 바라봅니다. 나도 책을 응시했습니다. 책과 내가 밀어를 나누느라 커피가 식는 줄도 몰랐습니다.

     
         ▲ 책이 쌓인 내부 모습 (좌) / 내부모습 (우)

    종일 이곳에 앉아 차 마시며 책 읽고 호수를 산책하는 여유를 누리고 싶었습니다. 혼자서도 좋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도 좋겠습니다. 말은 하지 않아도 곁에 있기만 해도 서로 행복한 벗이라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함께 하늘을 보고 나무도 보고 일렁이는 호수도 보면서 말입니다. 

    ▲ 호수가 보이는 창가


    ▲  하늘이 보이는 창가

    Info. PAGE 9
    주소 : 경주시 보문로 132-24
    전화번호: 054)745-1999
    쉬는 날 : 매월 넷째 주 수요일
    주변 관광지 : 동궁원. 세계자동차박물관, 키덜트 뮤지엄, 물너울공원, 명활산성, 호수둘레길, 신라밀레니엄파크, 화폐전시관, 황룡원, 세계문화엑스포, 경주월드 등

       토함산이 바라보이는 수피아

    화랑교육원 앞, 마당 넓은 한옥입니다. 입구에 가서보니 ‘개인사정으로 임시휴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화랑도 반한 맛, 강볶이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꽤 유명세를 타는 집인데 임시휴무라고 하니 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야외에 마련되어 있는 벤치에 앉아 주변 경관을 둘러보았습니다.

    ▲  카페 수피아 전경


    ▲  화랑교육원

    바로 앞에 인성교육의 요람 화랑교육원이 있습니다. 어릴 적 걸스카우트 단원으로 수련을 왔던 때가 흑백영화처럼 떠올랐습니다. 화랑의 얼을 되새기며 올곧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심신을 단련하던 단발머리 여학생이 어딘가에 있을 것 만 같아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문득 ‘코미타투스’가 생각났습니다. 기원전 700년경 유라시아에 있었던 뛰어난 기마전사이며 영웅으로 칭송되었던 집단인데 신라 화랑과 흡사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들은 군주를 지키는 친위부대이며 전투 집단인 동시에 유라시아 초원의 개척자이기도 했습니다. 코미타투스의 정신이 신라화랑정신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멀리 유라시아에서 실크로드를 통해 동아시아 끄트머리 신라까지 전해진 문화교류의 결실은 아닐까, 다양한 문화를 수용했던 신라인들은 진취적이고 개방적이며 거기다가 도전정신도 강했으리라 상상해보았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우울해졌습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포항과 경주에서 연일 발생했다는 문자가 이어집니다. 역병을 물리치기위한 춤 ‘처용무’가 생각났습니다. 헌강왕께서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시어 소나무 숲을 헤치고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신종 역병 코로나19를 어르고 달래시어 멀리멀리 떠나가게 해 주시기를 기원해보았습니다.
    처용가를 부르며 소맷자락 휘날리며 한바탕 처용무를 추고나면 코로나도 멀리멀리 물러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집집마다 거리마다 처용의 얼굴그림을 방처럼 붙이고 깃발을 힘차게 흔들겠습니다. 국제적 관광지로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신라의 수도, 황금의 나라 신라가 고요함에서 깨어났으면 참 좋겠습니다. 떠나려고 하는 ‘여행’이 다시는 떠나지 못할 겁니다.     

    ▲  멀리 보이는 토함산


    ▲ 소나무 숲 산책로

    멀리 석굴암과 불국사를 품고 있는 토함산이 있고, 그 앞에 벼가 익어가는 들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왔습니다. 한줄기 비가 곧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Info. 카페 수피아
    주소 : 경주시 새남산길 57
    전화번호 : 054)774-7487
    쉬는 날 : 수요일
    주변관광지 : 화랑교육원, 통일전, 서출지, 염불사지, 동남산, 헌강왕릉, 보리사, 칠불암, 사천왕사, 선덕여왕릉, 국립경주박물관, 월지, 첨성대, 대능원 등등

       소나무의 수런거림이 들리는 솔라떼

     
    ▲ 솔라떼 전경

    서남산자락 삼릉 입구에 솔라떼라는 아담한 찻집이 있습니다. 찻집 곁에 소나무들이 비스듬히 서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남산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 삼릉계곡을 찾습니다. 이곳에 귀중한 유물들이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천년의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휘어졌지만 꼿꼿한 소나무들입니다. 소나무 숲을 거닐다가 오래된 무덤을 만났습니다. 위에서부터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라고 합니다. 이곳 서 남산 일대에는 신라시조 박혁거세부터 제55대 경애왕까지 박씨 왕릉 10기가 분포되어 있습니다.
    이곳과 머지않은 곳에서 마애석가여래좌상과 선각육존불을 만났습니다. 한때 이 길에는 수학여행 오는 학생들과 등산객들로 주차장이 가득 메워지기도 했습니다만 최근에는 그렇지 않아 소나무들이 더 쓸쓸해보였습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순간들입니다. 친구들과 밥 먹고 차 마시며 수다 떨던, 아무렇지도 않던 나날들이 그립습니다. 여권을 챙기고 여행용 가방을 끌고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을 타고 밤길을 달리던 날들이 오래 된 옛이야기 같습니다. 삼릉골 소나무들도 사람을 기다리며 수런거렸습니다. 

    ▲수런거리는 소나무 (좌) / 소나무가 보이는 풍경 (우 -위) / 길손을 기다리는 석등 (우-아래)

    Info. 카페 솔라떼
    주소 : 경주시 포석로 607
    전화 : 054) 772-8968
    주변 관광지 : 남산 삼릉계곡, 망월사, 삼불사

       한옥이 예쁜 카페 포석정

    포석정 입구 도로변에 예쁜 2층 한옥이 있었습니다. 유적지 포석정 앞에 카페 포석정이 있으니 이곳을 약속장소로 정한다면 듣는 사람이 착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건물 뒤쪽 널찍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실내였습니다. 커피 주문하기가 미안할 정도였습니다만 주인은 상냥하고 친절했습니다. 찻잔을 들고 2층으로 갔습니다. 나무 향이 그윽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초목들은 가을맞이 손짓을 하느라 한창이었습니다.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시며 그 뜨거웠던 여름날을 회상했습니다. 바람이 찻잔을 쓰다듬으며 지나갔습니다.

    ▲  카페 포석정 전경


    ▲ 2층 실내모습

    바람처럼 지나간 신라역사가 떠올랐습니다.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가 탄생하였다는 나정과 그의 무덤으로 전해오는 오릉이 가까이 있으니 삶과 죽음은 서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던 나라도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도 영원하지 않으며 언젠가 사라지는 것이 진리인가 봅니다. 진한 커피를 마시며 벚나무 우듬지에 발그스레하게 다가온 가을을 바라보았습니다.

    ▲ 2층에서 바라보이는 남산과 포석정, 벚나무


    ▲ 테라스 (좌) / 테라스에서 커피 한잔 (우)

    Info. 카페 포석정
    주소 : 경주시 포석로 733-8
    주변 관광지 : 포석정, 삼릉, 오릉, 상서장, 국립경주박물관, 월정교, 월성 등

       마음이 정갈해지는 바루

    무열왕릉 옆에 있는 사찰음식 전문집입니다. 아마도 ‘발우’의 방언이거나 소리 나는 대로 ‘바루’라고 표기하였을 것 같습니다. 선도산이 멀찌감치 앉아 ‘연화바루’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바루전경

    반가이 맞이하는 주인님을 따라 들어갔습니다. 정갈했습니다. 창가 방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연꽃 한 송이가 그려진 단정한 표지를 넘기자 여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메뉴와 가격이 적혀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외국인을 위한 메뉴판입니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그 나라의 문자로 적힌 메뉴판이 아니라 여행객이 알 수 있는 언어로 된 메뉴판을 보면 참 반갑습니다. 인도와 유럽 등지에서 한국어로 적힌 글자를 만나면 마치 오랜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경주는 국제도시입니다. 외국인이 선뜻 먹을 음식을 정하지 못할 때 이런 메뉴판을 보면 쉽게 결정할 것 같았습니다.

    ▲ 실내모습


    ▲  한국인을 위한 메뉴판 (좌) / 외국인을 위한 메뉴판 (우)

    정식을 주문했습니다. 다소곳한 연꽃문양이 있는 다기에 따스한 찻물이 마음을 녹여주었습니다. 이어서 연꽃 씨앗으로 만든 죽과 발효한 블루베리 소스를 얹은 야채샐러드가 나왔습니다. 나무수저로 음식을 먹으니 사찰음식의 느낌이 더했습니다. 치자빛 밀전병과 가지와 깻잎튀김, 연밥, 버섯꼬지, 묵무침과 버섯 누룽지 탕수, 일곱 가지 나물과 반찬, 된장을 겸한 밥을 남김없이 먹었습니다. 숭늉과 과일로 입가심을 하니 개운했습니다. 사찰에서 공양을 한 듯 몸도 마음도 맑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찰음식은 경주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불교를 구심점으로 삼아 삼국통일을 이루고, 불교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운 곳이 바로 오늘날의 경주이기 때문입니다. 상에 차려지는 모든 음식이 내 입으로 들어가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입 밖으로 나오는 말도 향기로운 언어가 되기를 소망하며 고요히 음식을 먹었습니다.

    ▲ 연꽃문양 다기(좌) / 치자빛 밀전병 (중간 -좌) /  깻잎가지튀김 (중간 -우) /  나물과 된장 (우)

    마당으로 나와 선도산 자락을 바라보았습니다. 선도산은 선도성모를 산신으로 모시는 신성한 곳입니다. 산자락에는 삼국통일의 초석을 다진 무열왕과 영토를 확장한 진흥왕, 불교를 국교로 공인한 법흥왕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도로 건너편에는 평생 외교활동을 했던 무열왕의 둘째아들인 김인문의 무덤도 고요히 엎드려있었습니다. 도로가 생겨 분리되는 바람에 아버지와 아들의 유택이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 선도산과 무열왕릉

    경주에 있는 고분 중에 묻힌 사람이 분명한 무덤 중의 한 곳입니다. 국보로 지정된 태종무열왕릉 귀부 이수 앞면 중앙에 전서체로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고 새겨진 글씨가 말해줍니다. 아들인 김인문이 아버지의 비문을 지었다고 합니다.
    무열왕(김춘추)과 김유신장군의 가족관계는 흥미롭습니다. 김춘추는 할아버지인 진지왕이 폐위되는 바람에 왕 즉위 순서에서 밀려난 듯 했으며, 김유신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김구해의 증손으로 법흥왕 때에 신라로 편입된 가야 왕족의 후손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었던 셈입니다.
    무열왕의 왕비는 김유신의 작은 누이였습니다. 어느 날 큰 누이가 선도산에 올라 소변을 보았는데 장안이 모두 잠기는 꿈을 꾸었답니다. 동생은 언니에게 비단치마를 주고 그 꿈을 산 후 김춘추의 아내가 되어 문무왕(김법민)과 김인문의 어머니이며 왕후가 되었습니다. 훗날 언니도 김춘추의 세 번째 부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서로 다르면서 또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들이 한 가족이 되어 대업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큰 업적을 바라지는 않지만 서로 다른 환경과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자기주장만 내세우지 말고 서로 존중하면서 밝은 미래를 설계하면 참 좋겠습니다. 천년을 유지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를 가늠해보았습니다. 멀리 남산자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노천박물관이라 불리는 남산을 바라보노라니 열차가 추억처럼 지나갔습니다. 익숙한 습관으로 열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습니다. 네 량으로 이어진 무궁화호는 가볍게 몸을 흔들며 떠나갔습니다.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싶었습니다.  

    ▲ 남산 전경

    Info. 연화 바루
    주소 : 경주시 대경로 4827
    전화 : 054) 774-5378
    쉬는 날 : 둘째, 넷째 월요일
    주변 관광지 : 태종무열왕릉, 김인문묘, 서악서원, 서악동 삼층석탑, 선도산 마애삼존불, 성모사(聖母祠), 김유신장군 묘 등

    오래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경사스러운 고을, 천년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을 다녀오니 새 힘이 생겼습니다. 맛난 음식을 먹고 멋진 경관을 감상하며 자유를 누리니 우울해진 마음이 다소 가벼워졌습니다. 몸과 마음을 차분하고 정갈하게 해준 경주 나들이였습니다. 여행은 떠나지 않았으며 떠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잠시 머물고 있을 뿐입니다.

     

    이순영 경북여행작가의 9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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