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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이국적인 곳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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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속 이국적인 곳을 찾아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통해 견문이 넓어지고 사회를 보는 시각도 다양해졌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여행의 문화도 변화하였으며 무엇보다도 관광업과 서비스업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내여행보다 해외여행이 왕성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휴가철이나 황금연휴로 이어지는 때는 출국자와 입국자로 국제공항이 붐비기도 했습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로 여행을 오면 가장 한국적인 장소를 찾았습니다. 한때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를 여행 할 때도 한국과 다른 풍광을 감상하거나 그 지역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풍습을 보고 느꼈습니다. 세계는 넓고 갈 곳은 많다는 말을 후렴처럼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코로나19가 세계에 확산되면서 발이 꽁꽁 묶이다시피 되고 말았습니다. 최초 해외여행을 위해 적금을 들고 여행서적을 뒤적이면서 설레던 마음들이 한순간에 뜬구름처럼 되었습니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는 그날까지 국내여행에 관심을 기울일 시기입니다. 출국을 하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나는 곳을 여행하는 것도 색다른 묘미가 있을 것입니다.
    포항의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해파랑길 18코스에 해당되는 송라면 화진해변에서 칠포해변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해안마을과 도심을 흐르는 동빈내항과 포항운하, 형산강변, 포스텍이 있는 대잠동 영일대 호수와 지곡동의 주택가의 주변경관도 전통적인 한국의 모습이 아니라 놀라웠습니다.

       화진해변에서 칠포해변까지

    화진리

    해파랑길 18코스가 시작되는 송라면 화진해수욕장입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영덕군입니다. 포항시와 경계를 이루는 화진리에서 해안길을 따라 남쪽으로 오면서 만난 푸른 바다를 마당으로 삼고 있는 해안마을은 매우 이국적이었습니다. 여권을 챙기고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로 가지 않더라도 가까운 곳에서 이국적인 풍광을 만나니 새로웠습니다.
    화진리는 바닷가마을인 구진(龜津)과 대진(大津), 내륙마을인 화산(華山)으로 이루어진 마을입니다. ‘화진’은 화산의 ‘화(華)’와 구진, 대진의 ‘진(津)’을 따서 만들어진 마을 이름입니다.
    구진(龜津)은 마을 앞 바닷가에 거북모양을 한 큰 바위에서 유래한 지명입니다. 이 마을에는 정월 대보름 낮에 부녀자들이 모여서 하는 특이한 줄다리기가 전해옵니다. 여성들이 땅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서 줄을 당기기 때문에 ‘앉은 줄다리기’라고 하며, 줄이 네 가닥이어서 기(‘게’의 방언)을 닮았다 하여 ‘기줄당기기‘라고도 합니다. 앉은 줄다리기를 하게 된 연유는 오래 전, 이 마을에서 별신굿을 하던 중 굿판에서 무당이 즉사하는 변이 생기고 나서부터 별신굿을 하지 않고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흥을 돋우는 부수적인 역할만 할 뿐, 갯목을 끼우거나 줄을 당기는 행위는 온전히 여성들만 하는 줄다리기입니다.
    대진(大津)은 원산과 부산으로 오가는 선박들이 많이 드나들게 되면서 ‘큰 나루’란 뜻으로 대진이라 불렀다고 전합니다.
    화산((華山)은 ‘화산(花山)’이라고도 표기하는데, 마을 동편 백사장에 해당화가 많아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화진해수욕장이 있으며, 해수욕장 남쪽 군부대 해양훈련장 안에 ‘썩은숭이네 고랑’은 임진왜란 당시 도리산 봉군(烽軍), 송라도찰방군(松羅道察訪軍), 의병, 주민 등이 합세한 아군이 이곳에 상륙한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입니다. 매년 현충일에 이곳에서 산화한 호국영령들을 위한 위령제를 지냅니다.


    화진해변


    화진리2

    방석리

    화진해변을 지나 방석리에 이르렀습니다. ‘방석’은 방화동과 독석獨石 마을을 합하여 지어진 이름입니다. 방화동芳花洞은 이 마을에 바위산인 도리산桃李山이 있는데 옛날엔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가 많아서 꽃이 필 때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마을이름을 ‘방화’라 했다고 합니다. 독석獨石은 마을 앞 바닷가에 검고 널찍한 큰 바위 하나가 외로이 있어서 불리는 지명입니다. 한때 해안이 아름다워 ‘나폴리’라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국적인 건물들이 즐비했습니다. 해안과 언덕위에 펼쳐진 풍광이 마치 유럽의 어느 마을을 닮았습니다.
     


    방석리

    조사리(祖師里)

    원각조사(圓覺祖師)가 태어난 곳이라 하여 조사리라 부릅니다. 원각조사는 어머니가 해와 달의 빛을 품에 안아 잉태하여 고려 우왕5년(1379)2월 15일 이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가뭄이 심하였는데 조사가 태어나자 14일간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12세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인생의 허무를 절감하여 언덕 위에 있는 숲 속에 들어가 명상에 잠긴 후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않았답니다. 3년이 지난 7월 초하룻날 아침, 동해바다 위로 태양이 불끈 솟아오르고 온 천지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것을 바라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으면서 ‘장하고 기특하도다. 태양의 광명이다.’라고 외치고부터는 입을 열기 시작하여 말을 거침없이 하였다 합니다. 18세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부처님을 믿으며 극락왕생을 기원하였으며, 21세에 혼인하여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보경사와 성도암에 가서 스님들과 불법을 토론하고 경전을 읽으면서 진리 탐구에 힘쓰는 한편 일기와 농사의 풍흉을 예측하기도 하였습니다.
    81세 되던 1459년 6월 15일에 위엄을 갖추고는 사람들을 불러 ‘내가 죽고 1년 후에 고을에 도역(道譯)이 생길 것이고, 130년 후 바다 건너 더러운 도적이 쳐들어와 강토를 점령하고 산하에 해골이 가득하여 천리에 피가 흐를 것이며, 서쪽 군병이 와서 천하가 어지러우나 천지신명이 도와 나라는 보존할 것이다.’ 라는 예언을 남기고 입적하였습니다,
    조사가 입적한 후 과연 도역인 송라도찰방이 생기고 133년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국토가 초토화 되었습니다. 출가하여 수도한 일이 없으면서도 불법에 통달했으므로, 그가 임종하자 불자들이 불교의식으로 장례를 하고, 원각조사(圓覺祖師)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도 이국적인 모습이 보였습니다.


    조사리

    월포리

    청하면 월포해수욕장에 왔습니다. 월포리(月浦里)는 해안에 넓게 형성된 마을입니다. 요즘은 월포리, 하면 대개 월포해수욕장을 먼저 떠올리지만, 역사적으로는 왜구를 막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 이름이 높았던 곳입니다. 각종 지리지나 옛 지도에 ‘개포(介浦)’로 표기돼 있는 이곳은 포항 지역에서 최초로 해군기지인 수군만호진이 설치되었던 곳입니다. 지형이 ‘U’자형의 만灣을 이루고 있어서 바다로부터 들어오는 왜구를 막기에 적합하여 군영(軍營)을 설치하여 병선을 배치하였습니다. 하지만 해문(海門), 즉 바다 쪽으로 트인 공간이 지나치게 넓어 피해가 발생하는 문제점 때문에 고려 우왕13년(1387)에 영일현 통양포(通洋浦)로 옮겼습니다.
    월포리에는 마을 이름에 걸맞게 ‘월월이청청’이라 민속놀이가 전승되고 있습니다. 월월이청청은 동해안에 전해 내려오던 가무(歌舞)형식의 여성 민속놀이로, 팔월 한가위나 정월대보름 밤에 주로 행합니다. 휘영청 밝은 달 아래 열대여섯 살 처녀로부터 갓 시집온 새댁들이 고운 옷으로 단장하고 백사장에 모여 손과 손을 이어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앞소리꾼이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월월이청청’을 후렴으로 부릅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민속놀이로서의 명맥을 잃은 채 그 때 부르던 민요 사설만이 희미하게 전해지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은 음력 1월 15일 보름달이 떠오를 때 청하면민들이 모여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등 대보름 민속놀이를 개최합니다. 오늘날은 포항문화원에서 포항의 민속놀이로 계승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해수욕장 주변에 이국적인 모습들에 눈길이 끌렸습니다. 


    월포리 해안 - 자동차가 바다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더 편리해진 캠핑장입니다.

    외국인들도 이곳에 여행을 왔습니다. 정말 해외여행을 온 것 같았습니다. 외국인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외국인이 있으니 더 어울렸습니다. 월포리 해변을 거닐다가 포스코 수련원이 있는 남쪽으로 왔습니다. 

    용두리(龍頭里)

    용산머리 북쪽에 형성된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용산에 관하여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이곳에 금슬은 좋았지만 자식을 두지 못한 유씨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유씨 부부는 자식을 얻기 위하여 천지신명께 정성을 다해 빌고 또 빌어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태어난 지 사흘 만에 마음대로 움직이고 걸어 다녔습니다.
    유씨 부부는 걱정이 되어 집안 어른들을 불러 모아 아이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큰일을 저질러 집안을 망하게 할 것이라며 죽여 없애야 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아이가 날 때 탯줄을 끊은 가위로 찔러죽이든지, 다듬이돌로 눌러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유씨 부부는 어렵게 얻은 소중한 아들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아들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죽는 순간 그 산에 살던 용이 아들의 한과 함께 하늘로 날아 가버렸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용이 하늘로 날아 가버린 산이라 하여 그 산을 용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용산 위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큰 솥 바위와 작은 솥 바위가 있습니다. 용산자락에 이국적인 건물이 있었습니다.


    용두리 마을전경

    이가리

    옛날 두 기생이 마을의 갈림길에 터를 잡고 늙도록 살았다고 하여 지어진 지명이라고도 하고, 도씨와 김씨 두 가문이 길을 사이로 하여 각각 집성촌을 일구었는데 차츰 번성하면서 서로 화합하여 한 마을이 되었다 하여 이가리라고 불렀다고도 합니다. 최근에 설치한 이가리 닻전망대와 카페, 그리고 담쟁이덩굴이 안고 있는 아담한 이가교회의 붉은 벽돌도 색다른 풍경이었습니다.


    이가리 닻 전망대


    이가리 해변 (좌) / 이가교회 (우)

    청진리

    이가리 해변을 지나 청진리에 왔습니다. 1리·2리·3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마을사람들은 1리는 대곶이, 2리는 푸나리, 3리는 보리진이라고 합니다. 대나무가 많아서 대곶이竹串라 하며, 바닷물이 ‘푸른 나루’를 경상도 방언으로 ‘푸른 나리’라고 부르다가 줄여서 ‘푸나리’라고 합니다. 보리진은 ‘포이포包伊浦·포위진包圍陣·모진牟津’으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임란 때 왜적을 포위하여 섬멸하였다고 전해오는 이야기도 있으며, 보리농사가 잘 되는 어촌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마을에도 이국적인 향이 물씬 풍겼습니다.


    청진리 해안모습

     
    청진리 카페 (좌) / 청진리 해안마을 (우)

    오도리

    흥해읍 오도리입니다. 오도烏島는‘검은 섬’이란 뜻입니다. 마을 앞 바다에 있는 커다란 바위섬이 까마귀처럼 검어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주변에 있는 바위들도 유난히 검은 빛을 띱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에 ‘사방기념공원’이 있습니다. ‘사방砂防’은 흙이나 모래가 물에 떠내려가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온 국토가 벌거숭이 산이던 시대에 녹화사업은 국가정책의 매우 중요한 과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식목일을 전후하여 나무를 심거나 사방사업에 온 국민이 힘을 모았던 것입니다. 선조들의 희생으로 오늘날 푸르른 산이 이루어졌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2007년 우리나라 사방사업 100주년 되는 해에 준공한 사방기념공원 전시실과 야외전시장, 산책로와 쉼터에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며 숲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오늘날의 모습은 2000년대 이곳에 대형 산불이 두 번이나 발생하는 바람에 어린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있습니다. 산불은 한순간에 많은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립니다. 저는 산불이 났을 때 이곳에 왔었습니다. 강풍이 부는 밤이었습니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불구덩이에서 소나무들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지금도 저의 가슴 깊은 곳에 살아있으며 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더 깊은 울음으로 되살아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상처가 아물어 가는 사방기념공원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장관입니다. 매년 새해 첫날 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곳이기도 합니다. 해안마을에 아담한 카페가 어우러져 이국적이었습니다.

     
    오도리

    칠포리

    오도리를 지나 칠포리(七浦里)에 왔습니다. 오도리와 칠포리를 잇는 연안녹색길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칠포리는 원래 ‘漆浦’라 하다가 ‘七浦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그 연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행정구역 개편 때 ‘漆’자가 너무 어려워 ‘七’자로 고쳤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바다에 있는 바위들이 검은 탓에 항구의 물빛이 옻칠을 한 듯 검어서 ‘칠포’, 또는 마을 북서쪽에 있는 절골이라는 곳에 옻나무가 많았다 하여 칠포(漆浦)라 했답니다. 이후 마을에 7기의 포대가 있는 성, 즉 칠포성(七砲城)의 이름을 따서 칠포리(七砲里)라 하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칠포성의 흔적은 남쪽 성벽에 ‘정덕십년을해조축성(正德十年乙亥造築城)’이라 새긴 돌이 남아있어 사실을 증명을 합니다.
    칠포해수욕장 옆 곤륜산(崑崙山)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칠포리 암각화군’이 있습니다. 가로 2.5m, 세로1.5m, 높이 1.4m의 자연석을 중심으로 주변 네다섯 개의 바위에 가면모양 같기도 하고, 검파형 같기도 하며, 방패모양이나 소머리 모양 같기도 한 문양이 여러 개 새겨져 있어서, 선사시대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어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습니다.
    칠포리 암각화군 앞에서 대원군척화비가 발견되었는데, 이 비석은 현재 흥해읍 성내리 영일민속박물관에 있습니다.
    칠포해수욕장은 재즈의 선율로 한여름 밤을 수놓을 때면 정말이지 환상적입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칠포리는 전통한국의 모습과 많이 달랐습니다.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칠포리


    칠포리 포토피아 카페

       도심의 이국적인 곳

    동빈내항·포항운하·해도동 도시 숲·영일대호수·지곡주택단지

    동빈내항

    조선 초기 해산물과 농산물의 집산지로서 동해안 굴지의 어항으로 배가 입항하여 계류, 정박 할 수 있는 중심항구였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포항항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동해안 수산업의 대표적 전진기지로 성장하였습니다. 농산물과 수산물이 육로와 수로를 통해 교역되어 중요 장시로 주목받았습니다.
    1930년대에는 동해안 수산업의 전진기지로 정어리·고등어·청어의 생산이 특히 많았는데, 그 후 이 일대에는 각종 어업 보조 사업이 번성하여 냉동 공장·통조림공장·주물공장 등이 대를 이어 온 곳입니다.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내항의 모습이 매우 이국적이었습니다.
    햇살이 따가운 날이었습니다. 맑았던 날이 오후가 되자 갑자기 어두워졌습니다. 소나기를 가득히 머금은 진한 회색빛 구름이 어둡게 밀려왔습니다. 구름사이로 뜨겁던 태양이 하루를 작별하는 순간,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고요한 항구에 하늘이 내려와 앉았습니다.



    동빈내항


    동빈내항 요트계류장


    동빈내항의 석양


     죽도시장 앞을 흐르는 포항운하

    포항운하

    1970년대 초 형산강에서 도심으로 흐르는 물길을 막고 땅을 메워 그 위에 집을 짓고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40년 정도 지나 예부터 흐르던 물길을 되살리기 위해 시민들을 이주 시키고 물이 다시 흐르도록 하였습니다. 2013년 11월 2일 통수식을 하였으며 운하에 유람선이 떠다닙니다.
    도심으로 흐르는 운하의 수변공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다양한 스틸아트 작품을 감상하며 산책을 할 수 있습니다.
    포항운하관에서 크루즈선을 타고 죽도시장 앞과 동빈내항, 울릉도여객선터미널을 지나 바다에서 포스코와 송도해수욕장을 바라보고 운하관으로 돌아오는 길이는 6.6km입니다. 곳곳에 볼거리와 그 분위기가 매우 이국적입니다.


    포항운하

    해도동 도시 숲

    형산 강을 따라 조성된 공원입니다. 유럽의 어느 정원 같았습니다. 해도동은 포스코가 건립되기 전까지만 해도 갈대숲과 염전으로 이루어진 저습지였습니다. 바닷가였던 이곳은 자연 지리적 조건으로 소금밭이 형성되어 소금 굽는 일을 시작하면서 마을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포항의 명산물인 재래식 소금이 서해안의 천연염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지만 1961년까지만 해도 면적이 약 8만평쯤(264,000㎡) 되는 소금밭이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습니다.
    상전벽해는 이럴 때 쓰이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도시 숲을 거니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보였습니다.


    해도동 도시 숲


    게이트볼 장

     

    강변에 넓게 펼쳐진 게이트볼 장에서 운동을 하는 어르신들도 활기차게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형산강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백일홍꽃길도 한국 고유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 우리 집 꽃밭에도 백일홍이 있었습니다. 키 낮은 채송화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그 뒤에 백일홍과 봉선화, 금잔화, 백합들이 어깨동무하고, 키 큰 해바라기가 큰형처럼 든든하게 꽃밭을 지켰습니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백일홍의 전설을 잊지 못합니다. 바다로 나간 바우를 기다리다 죽은 몽실이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였습니다.
    몽실이의 무덤에서 백일동안 피었다가 지는 꽃, 몽실이의 영혼이 백일홍으로 환생했다고 할 때 눈물을 글썽이며 슬퍼했습니다. 그 후로 나는 백일홍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슬픔에 잠기곤 했습니다. 강바람을 벗 삼아 꽃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슬프지가 않았습니다. 화려한 축제의 장 같았습니다. 백일홍은 마치 중년 여인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운 옷으로 단장을 하고 조금 진한 립스틱을 바른 중년 여인의 수다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백일홍 꽃길

    영일대호수

    포항시 남구 대잠동 영일대호텔 옆에 있는 호수입니다. 영일대호텔은 포스코 건설 초기인 1970년대 초, 포스코를 방문하는 국내·외 귀빈들이 활용하던 영빈관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막걸리를 드시며 경제부흥과 산업현대화기술을 다짐하기도 한 아름다운 곳이기도 합니다. 고목이 우거진 주차장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뭅니다.


    대잠동 영일대 호수


    영일대호수 주차장

    지곡주택단지

    지곡동입니다. 이곳은 골짜기의 흙이 마치 찰흙과 같아서 비가 오면 신에 흙이 붙어 물위로 다녀야 할 정도로 질다는 뜻으로 ‘진골’, ‘쟁골’ 등으로 불렸다고도 하고, 골짜기가 길어서 ‘긴 골’을 경상도 방언으로 ‘진골’, ‘징골’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한 골짜기에 못이 있어 ‘못골’ 또는 ‘지곡池谷’으로 부르던 것을 ‘지곡芝谷’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는 설이 있습니다. 어느 이야기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옛 사람들의 정서가 느껴지는 지명입니다. 
    1968년 포항제철이 건립되면서부터 조성된 포철임직원 주택단지와 교수아파트단지가 마치 숲속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연구중심대학으로 건립된 포스텍을 비롯한 제철학원의 동·서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고, 제철공고, 포항테크노파크, 방사광가속기 연구소, 산업과학연구원, 포항지능로봇연구소 등이 우거진 숲속 공원에 있는 것 같아 매우 이국적이었습니다.


    지곡주택단지

    여행은 활력소입니다. 여행을 한 후에 더 맑고 새로운 기운으로 일상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포항에 이국적인 곳을 찾는 여행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의 목마름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여권 없이 다녀 온 이색적인 장소에서 깨달았습니다. 낯섦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도 있다고, 생각을 달리하면 일상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여행이었습니다. 

     

    Info. 여행정보 : 대중교통 이용 시

    ♦ 월포리 · 조사리 · 방석리 · 화진리 
    시외버스터미널·포항역에서 5000번 → 청하환승센터에서 마을버스 청하2 → 청하2 마을버스 청하환승센터에서 출발시간 : 07:15, 08:35, 10:05, 11:25, 14:35, 15:55, 17:15, 19:05
    ♦ 칠포리 · 오도리 · 청진리 · 이가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5000번 / 포항역에서 120, 121 → 흥해환승센터에서 마을버스 청하4  →청하4 마을버스 흥해환승센터에서 출발시간 : 첫차 06:50 ~ 막차20:00(30분~40분 간격으로 운행됨)
    ♦ 동빈내항 · 포항운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11, 110탑승
    ♦ 해도동 도시 숲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900
    ♦ 영일대 호수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207
    ♦ 지곡동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207, 306

     

    이순영 경북여행작가의 7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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