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경북나드리

    통합검색
    어서오이소! 경북 천년의 문화, 천혜의 자원
    포항 호미반도해안둘레길
    조회수23 좋아요수0
     
    포항, 혼자 걷기 좋은 호미반도해안둘레길
     
     

    가끔은 혼자 여행을 훌쩍 떠나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홀로 하는 여행의 맛을 아는 사람은 압니다. 더구나 요즈음은 코로나19로 인해 한적한 곳을 찾아 사색하며 여유롭게 다니는 여행이 제격입니다. 시원한 바다를 길동무 삼아 포항의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을 다녀왔습니다. 이 길은 해안을 드라이브하기에도 멋진 코스입니다.
    해파랑길 770km중 포항의 해안은 204Km입니다. 그 가운데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일부구간은 해파랑길과 겹칩니다. 포항시 남구 청림동행정복지센터에서 호미곶까지 25Km, 호미곶에서 두원리까지 33Km를 합하여 58Km에 이릅니다. 25km는 4코스로 나누어서 가볍게 걸을 수 있습니다.

    ▲ 호미반도해안둘레길 지도

    1코스 연오랑세오녀길은 청림동행정복지센터에서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까지 6.1km, 2코스 선바우길은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에서 흥환보건소까지 6.5km, 3코스 구룡소길은 흥환보건소에서 대동배항까지 6.5km, 4코스 호미길은 대동배항에서 호미곶광장까지 5.6km입니다. 1코스부터 걸었습니다.

     

       1코스 연오랑세오녀길

    청림동(靑林洞)은 예부터 고목들이 우거진 숲이 있다고 하여 지어진 마을이름입니다. 오늘날은 공단이 조성되어 있어 옛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만 지명으로나마 그 흔적을 어렴풋이 짐작해 봅니다. 
    행정복지센터 정원에 청림동을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파란색 곡선은 청림동의 영문 이니셜 ‘C’자이며, 배경의 파란색은 송림을 뜻하고, 상단의 붉은 점은 해를 의미합니다. 해와 더불어 생명의 원천인 푸른 숲에 둘러싸인 청림동의 도약하는 의미를 담았답니다.


                ▲ 청림동행정복지센터 (좌),  은행잎모양 의자 (우)

    청림동행정복지센터 정원에 은행잎모양의 의자가 길손을 기다립니다. 이런 의자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도시경관도 아름다울 것이고, 앉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질 것입니다. 다양한 나뭇잎이나 꽃잎모양의 의자에 앉으면 좋은 이야기들만 나눌 것 같습니다. 딱딱한 의자이지만 향기가 배어있고 추억이 쌓일 겁니다. 홀로 하는 여행은 머물고 싶은 시간도 자유롭습니다. 잠시 은행잎 의자에 앉았다가 길을 나섭니다.


         ▲ 호미반도해안둘레길 시작점

    자동차 길과 나란히 이어지는 인도를 걸었습니다. 높다란 버드나무아래 쥐똥나무가  길게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바람에 출렁이는 버드나무 가지가 봄처녀의 하늘거리는 치맛자락 같았습니다. ‘쥐똥나무’는 꽃이 진 자리에 열리는 까만 열매가 마치 검은 쥐똥을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북한에서는 검은콩을 닮았다고 하여 ‘검정콩알나무’라 부릅니다. 이 나무는 꽃향기가 아주 은은합니다. 소복소복하게 하얀 꽃이 피었는데 꽃말은 ‘강인한 마음’이랍니다. 쥐똥나무 꽃말처럼 강인한 마음으로 발을 내딛었습니다.
     홀로 걷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나무들과 꽃송이, 그리고 풀 한포기도 모두 길동무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자동차와 사람들, 거리의 신호등과 다양한 건물들과도 눈빛을 나누었습니다. 쥐똥나무 울타리가 끝날 무렵 청포도길이 이어졌습니다. 

    ▲ 청포도 길

    이 길은 이육사선생의 시 <청포도>가 창작될 당시의 모습을 회상하여 다양한 포도나무를 심어두었습니다. ‘청포도’하면 이육사의 시 <청포도>가 떠오릅니다. 학창시절 국어선생님께서 이 시의 창작배경은 포항이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해병사단과 포항비행장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사람들이 이 일대 200만㎡ 언덕에 경작했던 ?미쯔와(三輪)포도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포도밭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명승지였던 셈입니다.
    독립운동가 이육사는 1936년 만주에서 귀국하자마자 체포되어 서울형무소에서 구류되어 있다가 석방되었습니다. 당시 폐결핵을 앓던 중이라 공기 좋은 곳에 요양삼아 포항 송도에 살던 집안형님의 집에 수개월 간 머무는 동안 이곳을 자주 방문하였으며, 포도원 언덕에 올라 영일만 바다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육사가 이곳을 찾았을 때 이 일대 언덕은 온통 포도밭이었습니다. 안동이 고향인 육사는 쪽빛바다와 부서지는 파도, 달콤한 포도 향과 멀리서 다가오는 흰 돛단배를 바라보며 시상이 떠올라 시 <청포도>를 창작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중국으로 가서 교정을 본 후 국내로 보내어져 1939년 『문장』지에 발표되어서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 청포도 시비(청림동) (좌),   청포도 시비(동해면 주민센터) (우)

    시 <청포도>의 창작 배경이 되었던 지역에 건립해 둔 <청포도 시비>입니다. 포도원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킬 때부터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제가 포도밭 일부에 군용비행장을 건설하면서 점차 사라졌습니다. 남아있던 포도밭도 광복 후에 이재민후생농장(罹災民厚生農場)이 되었으며, 이후 미군정에 의해 비행장이 확장되면서 포도밭은 더욱 축소되었습니다.

    포도원은 주인이 몇 번 바뀌면서 ‘포항삼륜포도주공사’로 이름도 달라졌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포항삼륜포도주’는 1960년대 중반까지 서울 시가지 전차에 광고까지 할 정도로 포항의 특산물로 인기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당시 크라운레코드사에서 한국 최초 포도주 해외수출기념 광고용 선전음반까지 냈으며 ’대한민국정부지정 해외수출 생산업체‘였다고 합니다. 또한 포항포도주를 테마로 기획된 음반이 제작되었고 은방울자매가 ‘첫사랑에 취한 맛?을 노래 불러 인기가 높았으며, 그 외에도 몇 곡의 음반이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1972년 문을 닫으면서 포항포도주와 포항포도원은 기억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포도주를 생산하던 곳입니다. 오늘날 포항을 대표하는 기업체가 ‘포스코’라면 당시에는 ‘삼륜포도원’이었던 셈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바뀌면 달라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넓은 포도원이 지금도 있다면 참으로 낭만적이겠습니다. ‘사랑이 많다 해도 첫사랑만 못해요 / 첫사랑에 취한 맛 달콤한 포항 포도주~’ 그 달콤한 포도주를 맛 볼 수 없으니 그 맛이 더 궁금해집니다.  

    수년 전 스위스 라보지구에서 만난 포도원이 생각났습니다. 유네스코에 지정된 넓은 포도원의 자연환경이 포항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코발트빛 호수가 바다처럼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펼쳐진 넓디넓은 포도원을 거닐었습니다. 먼 나라에서 수십 년 전 대한민국 포항의 포도원을 만나는 것 같았습니다. 가슴이 벅차올라 두 눈을 꼭 감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그때 그 모습의 포도원이 있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포도원이 아닐까, 포항을 대표하는 으뜸관광지가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혼자 여행의 좋은 점은 마음껏 나만의 사유를 펼칠 수 있는 것입니다.

    봄바람에 작은 나뭇잎들이 살랑입니다. 작은 구슬 같은 연둣빛 포도알들이 방울방울 매달려있습니다. 포도넝쿨 아래로 걸으니 짙은 그늘이 참 좋습니다. 칠월이 되면 달콤한 포도 향이 거리에 가득할 것입니다. 문득 떠오르는 ‘청포도 사랑’ 을 흥얼거리며 청포도 길을 걷습니다.

    " 파랑새 노래하는~ 청포도 넝쿨 아래로~ 어여쁜 아가씨여~ 손잡고 가잔다~
    그윽이 풍겨주는 포도향기~달콤한 첫사랑의 향~기~ 그대와 단둘이서 속삭이면~
    바람은 산들바람 불어준다네~파랑새 노래하는~청포도 넝쿨 아래로~그대와 단둘이서 오늘도~맺어보는 청포도 사랑~ "

    콧노래를 부르며 소녀처럼 청포도 길과 농촌 풍경거리를 지났습니다. 길 건너편에 ‘해군항공역사관’과 ‘해군 제6항공전단’이 있었습니다. ‘해군항공 역사관’ 해군 6항공전단이 포항에 설치된 1978년부터 오늘날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사진과 영상자료들을 전시한 곳입니다. 역사관 1층은 ‘해군6전단 홍보실’, 2층은 ‘해군항공 역사실’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추모관에는 항공인으로 활동하다 순직한 48인의 모습도 있으며, 해군항공의 개척자 ‘故 조경연 중령’의 활약상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야외에는 항공기를 전시한 안보공원도 조성 되어 있어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끕니다. 해군 제6항공전단 삼거리에서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갔습니다.


       ▲해군 제6항공전단 앞 삼거리 (좌), 삼거리 이정표 (중간),  청림운동장 방면 장미길 (우)

    해군 제6항공전단 앞 삼거리에서 청림운동장으로 향했습니다. 포도넝쿨과 은행나무 그늘을 지나고 시누대와 무화과, 접시꽃과 달맞이꽃과도 눈인사를 나누고, 넝쿨장미에도 눈길을 줍니다. 포항시의 시화는 장미입니다. 특히 2017년부터 도시전체에 그린웨이조성의 일환으로 천 만 송이 장미도시를 목표로 영일대장미원 등 곳곳에 6만여 본의 장미를 심었으며 도로변이나 옹벽에도 다양한 장미를 심고 가꿉니다. 장미거리 걷기와 장미묘목 나누어주기도 합니다. 장미의 계절이 되면 세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장미를 만날 수 있습니다. 넝쿨장미의 배웅을 뒤로 하고 명아주가 무성한 들녘을 만났습니다.

    명아주는 아주 흔한 풀입니다. 밭에 잡초로 많이 자라며 생명력이 강합니다. 어릴 때 뽑아내지 않으면 자라는 속도가 빨라서 금세 온 밭을 뒤덮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이 풀은 청려장으로 활용될 정도로 유용합니다. 어떤 식물원에는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를 팔기도 합니다. 뿌리 채 뽑아서 잘 다듬고 건조시키면 아주 멋진 지팡이가 됩니다. 수년전 고향 밭에서 자란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 몇 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볍고 단단하여 가벼운 산행을 하거나 언덕을 오를 때 유용하게 사용합니다.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청려장의 표면이 손바닥을 자극하여 뇌에 자극을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청려장은 신라시대부터 만들어서 사용했다고 전해옵니다. 현대에는 1992년부터 세계 노인의 날에 그해 100세를 맞이하는 노인에게 대통령이 수여하고 있으며, 2018년에 100세가 되신 대한민국 할머니 할아버지들인 1,343명이 받았다고 합니다. 2000년 엘리자베스여왕이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청려장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농작물을 재배하지 않으니 명아주가 주인노릇을 하는가봅니다.

    청림운동장 앞입니다. 넓은 운동장에 두 사람이 걷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만남을 절제하고 멀찍이 떨어져서 운동을 하는 시민의 모습입니다. 운동장에서 바다 쪽으로 나아가면 오른쪽으로 데크길이 쭉 뻗어있었습니다. 30분 남짓 도심 속을 걸어와 만난 바닷길, 가슴이 확 트였습니다. 푸른 바다와 은빛모래사장, 그리고 해송만 보였습니다.


              ▲ 해안 길 시작점 (좌),   해안 길 모습 (우)

    해안길 시작점에 이르자 저만치에 빨간 옷을 입은 해병인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청림운동장 앞 해변에서 도구해수욕장까지는 훈련장입니다. 훈련기간 중 평일에는 통제를 하기 때문에 이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통제에 관한 문의는 포항시청 둘레길조성팀(054-270-3203)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회길은 해군항공전단 앞에서 구룡포 방면으로 직진하여 공항삼거리에서 동해면사무소로 가다가 동성고등학교 방면으로 좌회전해서 석곡문화원 앞길을 따라 해파랑길 자전거 길을 따라서 도구해수욕장으로 가면 됩니다. 이 구간은 군사훈련장이어서 개방을 늦게 한 곳입니다. 보드라운 모래밭이 길게 이어져 ‘어링불’이라 불리던 아름다운 해안입니다.

    유월의 바다와 하늘은 경계가 선명하지 않은 날이 많습니다. 코발트빛 바다와 높고 파란 하늘을 만나려면 찬바람이 불때가 좋습니다. 바다는 날마다 모습이 다릅니다. 그 빛깔과 파도, 수평선까지 하루도 같은 날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똑같은 일상이 시작되지만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하루를 맞이하고 보냅니다.

    멀리 호미곶이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해안길을 따라 걸어가면 호미곶에 이릅니다. 모래사장에 겟메꽃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습니다. 참으로 강한 생명력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겟메꽃에서 삶의 희망을 찾을 만합니다. 사막에서도 식물이 살듯이 말입니다. 데크길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해당화와 해송이 방풍림의 역할을 합니다. 해풍이 땀을 식혀주어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길을 따라 가다가 비닐하우스 단지를 만났습니다.

    포항의 특산품인 ‘포항초(시금치)’를 재배하는 곳입니다. 물 빠짐이 좋은 토질에서 자란 채소들이 해풍을 만나 식감이 좋고 맛과 향이 독특하여 포항을 대표하는 채소로 각광을 받습니다. 최근에는 ‘여름 무’를 재배하여 미국(LA)에 첫 수출을 했다는 반가운소식도 있습니다. 여름 무는 포항초를 수확한 후에 파종하여 거두어들이는 농작물로 맛과 식감이 뛰어나 경쟁력이 높다고 합니다. 왼쪽은 넓은 바다요, 오른쪽은 비닐하우스 단지가 펼쳐지는 길을 한참을 걸어가노라니 앉고 싶은 쉼터가 있었습니다.

    ▲ 쉼터

    잠시 쉼터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땀을 식혔습니다. 홀로 다니는 사람이 드문드문 지나갔습니다. 뒷모습이 평온해 보였습니다. 넓은 바다가 나의 마음속을 가득 채웠는가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내·외의 정치·경제·사회·문화가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입니다만, 곧 일상으로 회복되리라 믿습니다. 암울한 시기를 지혜롭게 이겨낸 사람에게는 명랑한 사회가 선물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방풍림으로 심어진 어린 소나무들이 강풍에 못 이겨 육지로 기울어졌습니다. 험난한 환경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자 하는 몸부림입니다. 하지만 하늘을 향한 새순들의 꼿꼿한 기개가 힘찹니다. 해병인들의 기개를 닮은 것 같습니다. 겟메꽃들도 해송아래에서 힘껏 응원합니다. 아픔을 겪은 사람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합니다. 휘몰아치는 모래바람을 온몸으로 이겨낸 승자들의 모습입니다. 기울어진 해송처럼 흔들리되 꺾이지는 않아야 될 것입니다. 어린 소나무들이 장차 황장목이 되는 날을 기대하며 도구해수욕장에 이르렀습니다.

     
          ▲ 도구해수욕장 (좌),  도구해수욕장에서 이정표 (우)

    ‘도구’라는 지명은 [삼국유사]에 전해오는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에서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 또는 도기야 라고 했다.’는 내용을 바탕 삼아 ‘도기야’는 오늘날 ‘도구’로 추정하여 이르는 마을이름입니다. 또한 이곳에서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간 갔을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호미반도해안둘레길 1코스의 이름도 ‘연오랑세오녀길’입니다.
    해수욕장 주변에 쓰레기를 처리하는 주민들의 손길이 바쁩니다. 특히 파도에 밀려온 쓰레기는 주워도 주워도 끝이 없습니다. 파도가 멈추면 쓰레기도 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 해안둘레길에서 송림 길 입구

    도구해수욕장을 통과하여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걷기전용길 바닥에 ‘호미반도둘레길’이라고 선명하게 적혀있는 길을 걷다가 왼쪽 송림 길로 내려갔습니다. 이 길은 최근에 조성된 길이라 이정표가 없었습니다. 앞만 보고 걷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걸으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곧 안내판이 설치되리라 믿습니다.
    송림길을 지나면 자전거길과 만났습니다. 잠시 자동차전용도로와 나란히 걷다가 나무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바닷가마을로 갔습니다. 마을 앞 방파제 벽에는 ‘해파랑길을 걷다, 연오랑세오녀 설화마을’이란 글자와 함께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 연오랑 세오녀 벽화

    다양한 벽화들이 정겨웠습니다. 사물놀이를 하는 흥겨운 모습, 수박서리를 하는 개구쟁이들을 원두막에서 뛰어 내려 붙잡으러 가는 웃옷 벗은 할아버지와 그 옆에 서서 입을 가리고 웃고 있는 소녀가 한편의 동화 같았습니다. 활짝 핀 해바라기와 살살이 꽃, 그 위로 날아다니는 잠자리들, 장미꽃 넝쿨 아래 새집처럼 생긴 빨간 편지함에서 그리움이 밀려왔습니다.

    ▲ 벽화, 장미와 편지함

    해안마을의 낡은 벽에 그려진 그림들이 길을 환하게 밝힙니다. 파란바다 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갈매기, 초록빛 넓은 들녘에 피어있는 예쁜 꽃들, 주황색 지붕아래 반쯤 열린 창문을 가린 포도넝쿨 커튼이 바람에 가벼이 흔들리는 듯했습니다. 아마도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동화속의 이야기처럼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림책을 구경하듯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임곡항 앞을 지나고 청룡회관을 바라보며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에 이르렀습니다.

    ▲ 청룡회관

    청룡회관은 현역해병대원과 퇴직 군인들의 복지제공을 위해 건립하였습니다. 1973년 죽도동에 창건한 옛 청룡회관은 해병대 장병들은 물론 해병가족들의 면회 장소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포스코가 설립되기 전, 포항은 해병의 고장으로 불릴 만큼 해병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습니다. 옛 건물이 노후화 되어 2000년, 현 위치에 신축이전을 하였으며 일반인에게도 개방을 합니다. 찻집에서 바라보는 포스코와 영일만이 한눈에 가득 찹니다. 청룡회관과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을 잇는 해안길은 아늑했습니다.

    ▲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삼국유사]에 수록된 <연오랑 세오녀>를 바탕으로 조성된 공원입니다. 전시실 <귀비고>와 공원에서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해질 무렵이면 이곳에서 아름다운 석양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저녁노을과 솟대가 어우러진 장면은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호미반도해안둘레길 1코스가 끝나고 2코스가 시작됩니다. 

     

       2코스 선바우길

    2코스는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에서 흥환 간이해수욕장까지입니다.


            ▲ 2코스 시작점 (좌), 입암리 방면으로 가는 길 (우)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주차장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판 옆을 나무계단을 내려가서 주차장 바닥에 적힌 길을 따라 갔습니다. 바다 쪽으로 난 좁다란 길목에 노랑·빨강 해파랑길 리본과 하선대‧선바우길을 가리키는 이정표들이 길을 안내했습니다. 데크길을 지나고 야자수 잎이 깔린 부드러운 길을 걷고 흙길도 걸었습니다. 전망대에 올라 해안을 바라보았습니다. 깎아지른 절벽과 출렁이는 파도, 드넓은 바다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훗날 이곳에 다시 오리라 약속하며 돌아 나왔습니다. 데크길을 따라 대숲을 통과하여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를 걸어 내리막길로 들어 입암리로 갔습니다.


     ▲ 선바우길1

    ▲ 선바우길2 

    마을을 지나 다양한 길을 걸었습니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와 바위길, 자갈 길, 모래 길, 시멘트 길도 있었습니다. 이 길은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크게 출렁이는 날은 더욱더 천천히 걸어야 됩니다. 사람살이에도 속도조절이 필요합니다. 희로애락에 따라 호흡을 조절하듯이 말입니다. 굵은 모래 길을 걷다가 솟대처럼 세워진 하얀 나무도 만났습니다.

    버려진 것들도 예술작품의 재료가 됩니다. 플라스틱물병, 깡통, 철사, 낡은 철조각, 헌옷, 헝겊이나 단추, 실타래들도 모두 멋진 작품으로 재탄생합니다. 파도에 밀려와 오랜 기간 해풍에 건조되어 하얗게 박제가 된 나무였습니다. 이 길이 사막이라면 먼먼 훗날 나그네에게 목숨과도 같은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파도가 발아래로 다가와 많은 이야기를 속삭였습니다. 세상일은 잊은 채 파도와 밀어를 나누며 고요하게 걸었습니다. 마을 앞 느린 우체통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 6개월 후의 나에게 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엽서를 전해주세요’ 라고 적혀있습니다. 6개월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나에게 엽서를 쓴 적 있습니다. 귀국 후 잊고 있던 차에 엽서를 받았습니다. 그날, 그 순간들이 갇혀 있던 기억의 창고에서 샘물처럼 솟아나 활력이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곳곳에 느린 우체통이 많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난 어느 날, 낯선 곳에서 나에게 쓴 엽서를 받는다면  추억이 새로울 겁니다. 이정표가 하선대와 선바우길을 가리킵니다.    

          
                ▲ 하선대 이정표 (좌),  선바우 (중간),  눈향나무 (우)

    해안에 우뚝 서 있는 바위라고 하여 ‘선바우’라 합니다. ‘입암(立岩)’은 선바우를 한자로 표기한 것입니다. 화산으로 인해 형성된 지형으로 역암, 이암, 응회암, 현무암들을 관찰할 수 있으며 백토(벤토나이트)성분도 많이 함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선바위에서 먹바우까지 약 700미터 길은 호미반도둘레길 가운데 가장 먼저 조성하여 개방한 길입니다. 선바우‧폭포바우‧안중근의사손바닥바위‧왕관바위‧킹콩바위‧하선대‧힌디기‧먹바위 등 자연이 빚어낸 신기한 바위들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안길입니다. 또한 이곳은 해국과 눈향나무 자생지이기도 합니다. 눈향나무는 ‘누운 향나무’로도 불리며, 옆으로 누워 자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호미반도의 척박한 퇴적층 벼랑에서 밀집되어 자라는 모습이 엉금엉금 기어가는 거북형상입니다. 세계자연보존연맹 멸종위기식물 명단에 위기 종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산림청도 희귀‧멸종위기 식물로 정해 법적으로 보호합니다.

    이곳에서 일몰은 장관입니다. 바다가 노을빛으로 물들 때면 숨을 멈추게 합니다. 일몰시간에 맞추어 이곳을 걸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일출과 일몰을 같은 장소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매우 드뭅니다. 호미반도해안둘레길 일부구간에서는 가능합니다.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시작하는 힘찬 일출과 아름다운 일몰을 이곳에서 맞이할 수 있습니다.
    힌디기에서 두 손을 모으고 몽돌 길을 걸었습니다. 자갈 소리가 아주 맑았습니다. 바다와 자갈의 합주회 같았습니다. 내 발자국소리는 소음 같기만 했습니다. 자연의 소리는 이토록 아름답지만 사람의 소리는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먹바우를 보고 여인바위 길을 지나 마산리에 이르렀습니다.

    ▲ 여인바위길

    파도와 바람이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빚어내었습니다. 트레머리를 한 여인이 먼 곳을 우러러보는 형상인데 가늘고 긴 목과 목 뒷덜미의 둥근 선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대만의 예류지질공원에서 보았던 여인형상을 닮았습니다. 바닷물이 여인 바위 앞으로 가까이 밀려올 때는 하트문양으로 달려왔습니다. 여인을 사랑하는 바다의 마음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사랑으로 어루만져 아름다운 모습을 빚었을 테니까요. 사랑, 영원한 언어입니다.

     
          ▲ 마산리 전경 (좌), 흥환 간이해수욕장 (우)

    고요한 어촌마을입니다. 휴식 중인 고기잡이배와 그물, 어부들을 생각하며 흥환리 간이해수욕장에 왔습니다.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텐트를 설치하고 라면을 끓이고 차를 마십니다. 빨간색 대형 양산이 푸른바다와 어우러져 그림 같았습니다. 자잘한 돌멩이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라 인기가 많은 곳입니다. 몽돌들이 발을 붙잡았습니다. 몽돌을 걷기 힘들면 차도를 걸어도 됩니다. 이곳까지 제2코스에 해당됩니다.

     

       3코스 구룡소길

    흥환리 간이해수욕장을 통과하고 일송정 숲을 지나면서 황화코스모스 사이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소나무 그늘아래에서 바닷바람에 온몸을 맡겼습니다. 홀로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배낭에서 커피를 내어 마셨습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멋진 카페는 없을 겁니다. 길이 앉아있는 나를 불렀습니다. 예쁜 나무 홍예교를 지나고 구룡소길로 향했습니다. 구룡소까지 4.6Km 남았습니다.

     
              ▲ 구룡소길 이정표 (좌),  말목장성 비 (우)

    해안마을은 비슷하지만 달랐습니다. 각기 다른 색채를 띠는 마을을 지나노라면 말목장성 비를 만납니다. 비각 안에 비석이 3기가 있는데 울목김부찰노연영세불망비, 흥인군 공덕비, 감목관 공덕비입니다.

    말목장성은 목장 안에서 기르던 말이 울타리 밖으로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성입니다. 삼면이 바다인 호미반도에서 내륙을 가로질러 돌을 쌓으면 천혜의 울타리가 형성됩니다. 신라시대 국영목장인 군마(軍馬)를 관리하기 위해 조성했다고 전합니다. 구룡포 돌문에서 동해면 흥환리까지 호미반도를 가로지르는 산등성이와 골짜기를 따라 약7.6km의 성을 축조했으나 현재 5.6km가 남아있으며 정확한 조성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세계 최대의 규모라고 합니다. 말목장성이 운영되었을 시기에 이 지역은 장기현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장기 말목장성’이라고도 합니다. 1905년 이후 목장을 폐쇄할 때까지 사육하던 군마 300여두는 일본군이 가져갔다고 합니다. 말갈기를 휘날리던 힘찬 군마들의 무리를 상상하며 발산1리에 왔습니다.

    인동초와 겟메, 해국과 해초들이 다소곳한 해안길을 걸어 장군바위 앞에 섰습니다. 우뚝 솟은 바위를 바라보니 힘이 솟아납니다. 씩씩한 걸음으로 모감주나무와 병아리꽃 군락지 앞에 왔습니다.

     
              ▲ 장군바위 (좌),  모감주나무와 병아리꽃 군락지(천연기념물) (우)

    모감주나무 꽃은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하늘로 향한 노란빛 꽃은 장관입니다. 염주나무라고도 하는데 진한 갈색의 단단한 씨앗으로 염주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꽃이 떨어질 때 마치 금빛 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하여 ‘Golden-rain-tree’라고도 합니다. 봄날 하얀색 병아리 꽃과 초록이 무성할 시기에 피는 노란색 모감주 꽃을 보러 또 와야 되겠습니다. 해안을 걷다가 산으로 올랐습니다. 구룡소로 가는 길입니다.


    ▲ 해안에서 구룡소 가는 길

    엉겅퀴, 인동초, 땅딸기, 눈향나무들과 눈 맞춤을 하며 소나무 숲길을 지났습니다. 달걀빛을 닮은 인동초 꽃향기가 주위에 가득합니다. 인동은 해열과 해독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어릴 적 할머니는 인동초를 고아서 환을 만들어두시고 약으로 드시던 일이 생각납니다. 사랑스러운 꽃 인동넝쿨과 피를 엉키게 한다는 붉은 보랏빛 엉겅퀴 꽃이 한창입니다.
    잎사귀 뒤에 숨어있는 빨간 구슬 같은 뱀딸기도 산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중딸’이라고 불렀습니다. 딸기의 모양이 마치 스님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입니다. 한 알 따서 오래된 달콤함을 맛보았습니다. 오르락내리락 산길에서 해송사이로 내려다보이는 구룡소가 장관이었습니다. 파도가 잔잔하니 곳곳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구룡소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여 ‘구룡포’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는 현장입니다. 겨울, 바람이 강하게 부는 어느 날, 이곳에 온 적 있습니다. 정말이지 용이 승천할 것 같았습니다. 파도가 달려와 바위를 덮치고 밀려가자 바위에서 분수처럼 물이 솟아올랐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머린포트홀’이라고 하는 해안형 돌개구멍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파도에 실려 온 자갈들에 의해 바위가 깎여 거대한 접시처럼 만들어지는데 그곳에 물이 담기면 작은 연못처럼 보입니다. 또한 바다에 잠겨있는 부분은 구멍이 뚫려있어 곳곳에서 물이 솟구치면 마치 용이 물을 뿜어내는 것 같습니다. 화산분출에 의해 이루어진 암석이 파도에 의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호미반도 둘레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형상의 바위들은 화산발생의 흔적들입니다. 이곳에서 풍어제나 기우제를 지내기도 합니다.

     
                ▲ 구룡소 전경 (좌),   대동배1리 항 전경(우)

    구룡소에서 내려와 대동배1리 항에 왔습니다. 대동배1리 버스승강장 앞에 설치되어 있는 이정표를 확인했습니다. 이곳에서 대동배교회 앞을 지나 해안길로 곧장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동배교회 앞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도를 살펴본 후, 바닷가 바위위에 소나무 한그루가 심어져 운치를 더하는 노적암을 바라보고 소나무숲길을 걸어 대동배2리로 갔습니다. 

     

       소나무숲 길 1.2km

     ▲ 대동배교회 앞 소나무숲길 안내도

    교회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길을 안내하는 표식이 친절했습니다. 표식을 따라 언덕을 올라 숲길을 걸었습니다. 사람의 흔적이 드문 호젓한 숲길이었습니다. 길은 다소 완만했으며 안내판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걷기 좋았습니다. 약 25분 동안 새들의 노래 소리가 혼자 걷는 나의 길동무가 되어 주어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 대동배2리

    ▲ 호미곶으로 향하는 이정표

    금세 대동배2리 표지석에 당도했습니다. 차도를 횡단하여 해안으로 향했습니다. 마을 앞 해안길을 따라 항구로 갔습니다. 드문드문 낚시 줄을 드리운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고요한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지 세월을 낚는지 그 모습은 평화로웠습니다. 저만치에 데크길이 기다렸습니다.

    ▲ 모아이상 길

    모아이상은 칠레의 이스터 섬 동남부 연안에 있는데, 모두 바다를 등지고 줄지어 서 있는 거대한 석상입니다. 그 석상의 얼굴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가까이에 다가서면 형상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면 많이 닮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거리, 사랑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게 적당한 간격을 두어야 아름다운 사랑이 오래 유지될 것입니다. 파도의 속삭임은 다소 거친 길도 가볍게 걸을 수 있게 했습니다. 누구라도 걷다보면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의 특징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은 그대로 두고, 그렇지 않은 길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다양한 길을 걸을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공사 중인 대동배2리 항에 왔습니다. 이곳은 호미반도둘레길 3코스 종점이자 4코스 시작점입니다.

     

       4코스 호미길

    마지막 코스입니다. 이 길을 곧장 가면 호미곶광장에 이릅니다. 마지막이란 말은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니까요.

     
       ▲ 공사 중인 대동배3리 방파제

    방파제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재난을 막기 위한 분주한 소리가 해안의 고요함을 깨웁니다. 때 이른 피서객들은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물놀이를 합니다. 물에 흠뻑 젖은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천진난만했습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공사구간을 지나 차도를 걷다가 시비(詩碑) <나 죽어서>를 만났습니다.
    ‘천천히 걸어서 대동배로 가든지 호미곶 등대불빛 따라 구만리 바닷물 찰박이는 저녁이면 치자 빛 노을 품고 홀로 앉아 늙은 그림자 비탈에 뉘일 터’라고 합니다. 시인이 죽어서도 가고 싶어 하는 곳을 홀로 가벼이 갑니다. 걸을 수 있을 때 걸을 수 없는 날을 생각하며 걸었습니다. 문자를 잊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쓰듯이 말입니다.

    길가에 버려진 천년초 선인장이 노란 꽃을 피웠습니다. 누군가의 보살핌도 관심도 받지 못했을 테지만 스스로 환한 꽃을 피워 올려 눈길을 받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무더운 여름날, 해안 길모퉁이에서 무더기로 핀 꽃, 찬란한 기쁨입니다.

    어느 해, 집안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호야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물도 주지 않고 따스한 눈길도 준 적 없지만 때가 되어 두툼한 잎사귀 뒤에 꽃대를 올려 조롱조롱 작은 꽃을 매달고 있었습니다. 지나친 관심보다 때로는 무관심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걸었습니다.  

      

    ▲ 해파랑길 안내판 (좌),  호미수회에서 심은 해송들 (우)

    해파랑길 표지판이 정겨웠습니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과 해파랑길이 겹쳐지기 때문에 두 가지 안내판을 동시에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미숲 해맞이터를 지나면서 호미수회에서 심은 1천여 그루의 해송을 감상했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싱싱하게 자라는 모습이 희망찹니다.

         
    ▲ 쾌응환호 조난기념비 (좌),  독수리바위 (우)                  

    쾌응환호 조난기념비는 1900년 초 일본이 우리나라 침략을 본격화 할 무렵 일본수산강습소 실습선 쾌응환호(137톤급)가 해류·어족분포·연해수심 등을 조사하기 위하여 동해안에 왔다가 구만2리 앞 바다에서 좌초되어 교관1명과 학생 3명이 조난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사고의 책임을 우리나라에 물어 호미곶 등대를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그 배의 승무원과 학생이었던 사람들이 이곳에 ‘수산강습소 실습선 쾌응환호 조난기념비’를 세워 해마다 참배를 하여 왔으나 광복 후 주민들이 철거하였습니다. 이후 1971년 재일교포에 의해 다시 세워졌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전쟁의 수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국력이 튼튼하여 감히 다른 나라가 대한민국을 얕잡아 보는 일이 없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독수리바위는 일명 ‘까꾸리바위’라고도 합니다. 이 지역에 포항의 특산물 과메기의 재료가 된 청어가 많이 밀려와서 까꾸리(갈고리의 방언)로 끌었다는 뜻에서 지어진 지명으로 '까꾸리개'라고도 부릅니다. 오랜 세월 바닷바람에 의해 마치 독수리를 닮은 바위가 빚어진 것입니다. 이곳에서도 일몰을 볼 수 있습니다. 오렌지 빛으로 물드는 바다의 석양 노을은 아주 장관입니다.

    시원스럽게 쭉 뻗은 해안 길을 따라 호미곶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철조망으로 둘러진 군부대 앞을 지나 마을에 이르자 아낙네들이 우뭇가사리를 말리고 있었습니다. 육지에서는 밭에 농작물을 가꾸고 거두어 들이 듯이 해안마을에서는 바다에서 갖가지 해초들을 수확합니다. 바다가 밭인 셈입니다. 무더운 날 고소한 콩 국물에 채 썬 우뭇가사리를 듬뿍 담아 한 그릇 마시면 더위는 썩 물러날 것입니다. 어촌 아낙네들의 바지런한 손길을 뒤로 하고 트릭아트가 있는 곳에 왔습니다. 포토존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면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 우뭇가사리 건조 장면 (좌),  청포도 시비(詩碑)(호미곶) (우)

    호미곶 위판장을 통과하여 해양경찰서 앞을 지나 등대를 바라보며 호미곶광장으로 갔습니다. 아이들을 태운 깡통열차가 신나게 달려왔다 돌아갔습니다. 아이들의 환호가 길 위에 돌돌돌 굴러다녔습니다. 나도 덩달아 즐거웠습니다.
    확대건립 공사 중인 국립등대박물관 옆 해송사이에서 청포도 시비를 만났습니다. 호미반도해안둘레길이 시작되는 청림동의 청포도길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하얀색 탑 모양의 등대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반가움과 아픔이 교차했습니다. 쾌응환호 조난사고의 책임으로 건립된 바로 그 등대이기 때문입니다. 1908년 불을 밝혀 오늘날까지 바다의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100년도 넘은 등대는 말없이 임무만 수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바다위의 둥근 데크길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인적이 드문 길을 혼자 걷다가 많은 인파를 보니 다소 놀라웠습니다. 마스크를 쓴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여 본인의 건강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불안감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스크 쓴 소년상 (좌),  호미곶광장 (우)

    바다를 향해 손짓을 하는 소년상도 마스크를 썼습니다. 빨간 색 느린 우체통과 상생의 손을 만났습니다. ‘상생의 손’은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바뀔 때 묵은 갈등은 모두 버리고  두 손을 마주잡고 화합하면서 나아가자는 의미에서 상생의 손을 건립했습니다. 바다에는 오른손, 육지에는 왼손이 하늘로 향하고 있습니다.

    육지에 있는 손앞에 3기의 불씨함이 있습니다. 1999년 12월 31일 변산반도 일몰시에 채화한 불씨와 2000년 1월 1일 영일만 일출의 태양에서 채화한 불씨, 그리고 남태평양 피지에서 채화한 지구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일렁거렸습니다. 이 불씨들은 성화로도 활용된다고 합니다. 광장에는 이외에도 볼거리들이 많았습니다. 호랑이상, 햇빛채화기, 연오랑세오녀상, 가마솥과 아기자기한 전시물들을 구경하고 새천년기념관에 들렀습니다.

    지하1층에 가상체험을 할 수 있었으며, 1층 로비에는 포항의 옛 사진전을 하며 전시실에는 포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영상과 사진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2층 화석전시실에서 신기하고 놀라운 생명체들에 관한 해설도 들었습니다. 3층에서 다양한 모양의 수석을 관람하고 전망대에 올라 광장과 호미곶 주변을 한눈에 내려다보았습니다. 광장에 가득 흐르는 음악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형이 연해주를 향해서 할퀴고 있는 범의 형상인데 범 꼬리에 해당되는 부분이 바로 호미곶입니다. 호미(虎尾)는 ‘범의 꼬리’ 라는 뜻입니다. 이곳에서 12월31일부터 1월 1일 새해 한민족해맞이 축전을 개최합니다. 2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새해 첫날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러 옵니다.

    호미반도해안둘레길 25km를 완주했습니다. 4코스로 나누어져 있으니 각자의 상황에 맞게 걸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의 형태도 많이 달라지는 중입니다. 단체여행보다 개별여행이 많아지며 혼자 하는 여행도 더 늘어날 것입니다. 홀로 길을 걸으며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며 생각하였습니다. 길은 나의 동무였으며 스승이었고, 나침반이었습니다.

     

       여행정보

     포항시는 2020년 7월말 경 시내버스 노선이 개편되면서 전기버스도 도입된다고 합니다. 7월 이후에는 시내버스 노선과 운영에 관하여 확인하고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양덕차고지(054-251-7202)와 문덕차고지(054-293-0320)로 문의하면 되겠습니다. 

    1코스 청림동행정복지센터 ~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6.1km / 약 1시간30분 소요

    * 포항역에서 시내방면 승차(107·500·501), 죽도시장에서 환승(101·102·175·100·200), 청림초등  학교 하차, 길 건너 청림동행정복지센터
    *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포스코방면 101·102 승차, 청림초등학교 하차 길 건너 청림동행정복지센터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포스코방면 100·200 승차, 청림초등학교 하차 길 건너 청림동행정복지센터
    * 주소 : 포항시 남구 신항로10(청림동 행정복지센터)

    2코스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 흥환간이해수욕장 6.5km / 약 2시간 소요

    * 포항역에서 시내방면 승차(107·500·501), 죽도시장에서 환승(101·200), 동해면사무소 하차 동해지선버스(09:10, 14:00, 16:20)탑승,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하차
    *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포스코방면 101승차, 동해면사무소 하차 동해지선버스(09:10, 14:00, 16:20)탑승,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하차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포스코방면 200승차, 동해면사무소하차 동해지선버스(09:10, 14:00, 16:20)탑승,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하차
    * 주소 : 포항시 남구 동해면 호미로 3012(연오랑 세오녀 문화공원)
    * 동해면사무소에서 동해지선버스가 자주 없으므로 택시를 이용해도 됨(3.2km)

    3코스 흥환간이해수욕장 ~ 호미곶 대동배3리 방파제 6.5km / 2시간 소요

    * 포항역에서 시내방면 승차(107·500·501), 죽도시장에서 환승(101·200), 동해면사무소 하차 동해지선버스(09:10, 14:00, 16:20)탑승, 흥환간이해수욕장 하차
    *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포스코방면 101승차, 동해면사무소하차 동해지선버스(09:10, 14:00, 16:20)탑승,   흥환간이해수욕장 하차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포스코방면 200승차, 동해면사무소하차 동해지선버스(09:10, 14:00, 16:20)탑승, 흥환간이해수욕장 하차
    * 주소 : 포항시 남구 동해면 흥환리 간이해수욕장
    * 동해면사무소에서 흥환리 간이해수욕장까지(8km)

    4코스 대동배3리 방파제~호미곶광장 5.6km / 1시간소요

    * 포항역에서 시내방면 승차(107·500·501), 죽도시장에서 200 환승, 구룡포환승센터 하차, 호미곶행 지선버스탑승, 대동배3리 하차
    *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포스코방면 101승차, 남부보건소 하차 200 환승, 구룡포환승센터 하차, 호미곶행 지선버스탑승 대동배3리 하차
    *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포스코방면 200승차, 구룡포환승센터 하차, 호미곶행 지선버스탑승,  대동배3리 하차
    * 주소 :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동배3리
    * 구룡포에서 대동배3리 방파제까지(14km)

     

    이순영 경북여행작가의 6월 여행기입니다

     

     

     

    태그
    #경북 #경북여행 #경북관광 #경북나드리 #포항여행 #포항 #포항가볼만한곳 #포항여행코스 #연인과함께 #호미반도해안둘레길 #산책하기좋은곳 #포항산책 #트레킹하기좋은곳 #나홀로여행 #연오랑세오녀길 #도보여행 #트레킹코스 #힐링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