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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실을 품고 있는 경상북도의 사찰 :: 추천! 언택트 여행, 교과서 밖으로 떠나는 역사여행
     
     

    최근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인해 사실상 어딘가를 나간다는 것이 불안한 마음이 드는데요. 실제 최근 들어 박물관이나 전시관 등 실내 관람 시설이 다시 문을 닫는 사례를 빈번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인데요. 언제 상황이 종료될 지 기약 없는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갈만한 언택트 여행지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언택트(Untact)는 말 그대로 접촉을 최소화한 여행이라고 보면 되는데요. 아무래도 언택트 여행은 실내 보다는 야외가 주를 이루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은 경상북도의 야외 관광지 가운데 역사성이 있고, 걷기 좋은 경상북도의 사찰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태실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중 세조의 가봉 태실비


    ▲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의 수호 사찰인 선석사


    ▲선석사에 자리한 태실법당

    특히 오늘 소개할 사찰은 조금 특별한 공통점이 있는데요. 바로 왕 혹은 왕비 등의 태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태실(胎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부분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사적 제444호)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에 가려진 측면이 있어서 그렇지 의외로 경상북도 곳곳에는 태실 관련 유적이 상당수 분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태실과 사찰은 어떤 관계일까요? 먼저 둘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태실에 대해서 이해해야 하는데요. 보통 태실이라고 하면 왕의 자녀가 태어날 경우 길지에 태를 묻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현존하는 태실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태실은 확인된 사례는 충북 진천에 있는 김유신의 태실로, 고려와 조선의 경우 왕실 차원에서 태실을 조성했음을 여러 기록과 현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충북 진천에 위치한 김유신의 태실, 경주가 아닌 진천에 김유신의 태실이 있는 것은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이 만노군 태수로 있을 때 김유신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태실을 조성하게 되면 태실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한데요. 여기서 태실을 관리할 수호사찰을 지정, 승려들의 잡역을 면제하고 태실을 관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 선석사’가 대표적인데요. 현재 경상북도의 사찰 가운데 태실 유적과 관련이 있는 사찰은 크게 ▲ 김천 직지사 = 정종 태실 ▲ 예천 용문사 = 폐비 윤씨, 문효세자 태실 ▲ 예천 명봉사 = 문종, 사도세자 태실 ▲영천 은해사 = 인종 태실 등이 있습니다. 이들 사찰에서는 사찰과 더불어 태실 유적을 함께 볼 수 있는데요. 그야말로 태실을 품은 사찰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이들 사찰과 태실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요?

       김천 직지사에 정종의 태실이 있다고?

    김천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중 김천 직지사(直指寺)가 있는데요. 여러 말사를 거느린 큰 규모의 사찰인데다 지명과 기차역에 이름이 들어갈 정도이니, 그 영향이 작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직지사는 황악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황악산 직지사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직지사의 창건은 고구려 승려인 아도화상과 관련이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도화상은 구미 도리사(桃李寺)를 세운 뒤 황악산 방향으로 직지사가 세워질 것을 암시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여러 번의 중창을 거쳐 현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니, 직지사는 그 자체로 오랜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는 공간이라 할 만합니다. 한편 직지사는 야외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인데요. 더불어 템플스테이 장소로도 꽤 유명세를 탄 곳입니다.

    ▲ 숲길을 따라 직지사로 가는 길


    ▲ 직지사의 길과 만세루


    ▲ 직지사 대웅전, 뒤로 보이는 태봉산의 정상에 정종 태실 관련 흔적이 남아 있다.


    ▲사명각과 내부 전경


    ▲ 측면에서 바라본 비로전

    이러한 직지사는 우선 매표소를 통과한 뒤 사찰 경내까지 숲길을 따라 이동하게 되는데요. 나무와 계곡을 따라 걷다보면 그 자체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직지사에 조선의 2대 왕인 정종의 태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 분들이 생각처럼 많지가 않은데요. 정종(定宗)은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 소생의 둘째인 이방과로, 제1차 왕자의 난(1398) 이후 태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지금이야 정종이라고 부르지만, 정종의 묘호는 숙종 때 받은 것으로, 그전까지 명나라가 내린 공정왕(恭靖王)이라 불렸는데요. 그런데 이방과는 고려 때 태어났기에, 애초 태실은 조성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정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함경도로 사람을 보내 묻었던 태를 가져오게 했고, 이를 직지사 대웅전 뒤쪽의 태봉산에 묻고, 가봉 태실을 조성한 것이 정종 태실의 조성 배경이 되었습니다. 즉 김천 직지사는 정종 태실의 수호 사찰이었고, 숭유억불의 조선 사회에서 직지사의 규모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정종의 태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태봉산의 정상, 정종 태실지의 전경


    ▲태실지에 남아 있는 우전석


    ▲ 태실지 주변의 소나무, 송진을 채취한 흔적으로, 일제강점기 당시의 흔적이다.


    ▲ 안양루를 지나기 전 볼 수 있는 정종 태실의 석물 흔적, 중앙 태석이다.


    ▲ 성보박물관 앞에 남아 있는 태실의 석물, 연엽주석과 우전석이다.


    ▲ 태실석물중수정공욱제불망비(胎室石物重修鄭公旭濟不忘碑), 정종의 태실을 중수한 뒤 세운 불망비다.

    그런데 정작 정종의 태실은 일제강점기 때 현 고양 서삼릉으로 태실을 옮겨지게 되는데요. 때문에 현재 정종 태실의 경우 태봉산 정상과 주변에 태실과 관련한 석물이 남아 있고, 또 다른 석물의 일부는 직지사 경내로 옮겨진 상태입니다. 크게 안양루 앞쪽에 있는 중앙 태석과 성보박물관 앞에 있는 연엽주석과 우전석, 마지막으로 정종 태실을 중수하면서 세운 ‘태실석물중수정공욱제불망비(胎室石物重修鄭公旭濟不忘碑)’가 남아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태실 관련 유물에 대한 별도의 안내문이 없는 상태이기에 알고 보지 않는 이상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김천 직지사를 방문하실 때 잠시만 관심을 가지고 기울여 보시면 직지사의 이름 속에 숨어 있는 정종의 태실이 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Info. 김천 직지사

    찾아가기: 경북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길 95(운수리 216)
    - 대중교통 이용 시 김천역에서 김천11번, 종상111-0번을 타고 50분~1시간 정도 소요, 필히 버스 운행 시간 확인 필요
    문의: 054-429-1700
    사이트 : http://www.jikjisa.or.kr/
    입장료 : 어른 2,500원(단체 해당없음), 청소년 1,500원(단체 1,200원), 어린이 1,000원(단체 800원)
    편의시설 : 무료 주차장 및 화장실 있음, 문화관광해설사 상주
    비고 : 태봉산 태실지로 가는 방법은 천왕문과 만세루 사이의 오른쪽 길로 가다 보면 소나무 숲길이 나오는데, 바로 왼쪽에 있는 산의 정상에 위치, 직지사 경내의 성보박물관과 안양루 앞쪽에도 정종 태실과 관련한 석물이 옮겨져 있음

     

       폐비 윤씨와 문효세자의 태실이 있는 예천 용문사

    예천을 대표하는 사찰이라면 단연 용문사(龍門寺)를 들 수 있는데요. 용문산 자락에 자리한 용문사는 꽤 규모가 있는 사찰로, 작년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가 국보 제328호로 승격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앞선 김천 직지사와 달리 용문사는 별도의 입장료가 없고, 다만 성보박물관을 입장할 때 성인 기준 1천원의 입장료를 내면 된다는 점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한편 예천 용문사 중수용문사기비를 통해 신라 경문왕 때 두운 선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특히 용문사는 조선 왕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유물이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인 예천 용문사 감역교지(보물 제729호)는 세조의 친필 교지입니다. 해당 교지는 승려의 잡역을 면해줄 것을 지시한 문서인데요. 이와 함께 용문사에는 2기의 태실이 남아 있는데, 바로 폐비 윤씨와 문효세자의 태실입니다.  

    ▲ 예천 용문사의 일주문을 지나며


    ▲ 일주문을 지나 용문사로 올라가는 길


    ▲ 용문사의 천왕문


    ▲ 측면에서 바라본 용문사의 전경


    ▲ 국보로 승격된 용문사 대장전, 뒤로 보이는 봉우리 정상에 문효세자의 태실이 있다.


    ▲ 용문사 대장전의 내부, 국보로 승격된 윤장대와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그야말로 보물을 품고 있는 전각이다.

    우선 폐비 윤씨는 사극의 단골인 연산군의 어머니로, <성종실록>의 기록을 통해 용문사에 태실을 조성한 것이 확인됩니다. 훗날 연산군이 즉위한 뒤 자신의 어머니를 제헌왕후로 추숭했기에, 제헌왕후 태실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보통 태실은 일반적인 왕자, 왕녀의 태실이 있고, 이 가운데 왕이 된 왕자의 경우 별도의 가봉을 거쳐서 석물을 추가로 배치하게 되는데요. 폐비 윤씨의 태실은 가봉 태실로, 현재 태실가봉비와 태함 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폐비 윤씨의 태실로 가는 길은 이정표가 친절하지 않기에 찾기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은데요. 우선 용문사의 화장실인 해우소 뒤로 난 길을 따라 가다가 양쪽으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 방향으로 200m 가량 걸어가면 잘 정비된 폐비 윤씨의 태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해당 태실 역시 일제강점기 당시 현 서삼릉으로 옮겨졌는데요. 태실비는 누군가 인위적으로 쪼아놓은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용문사 태실 관련 지도


    ▲ 폐비 윤씨의 태실을 찾아가는 길, 해우소 뒤쪽의 길을 따라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


    ▲ 모습을 드러낸 폐비 윤씨의 태실


    ▲ 측면에서 바라본 폐비 윤씨의 태실과 가봉 태실비


    ▲ 문효세자의 태실을 찾아가는 길, 천불전 옆쪽 산길을 따라 갈림길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가면 된다.


    ▲ 예천 문효세자 태실

    반면 문효세자의 태실은 이번에 국보로 승격된 용문사 대장전을 기준으로, 바로 뒤쪽 봉우리 정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는 길은 용문사 천불전의 왼쪽 산길을 따라 200m 가량 걸어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마찬가지로 오른쪽 방향으로 가면 이내 문효세자의 태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문효세자는 정조와 의빈 성씨 소생의 원자인데요. 정조로서는 어렵게 얻은 첫 아들이었고, 더욱이 정조가 사랑한 의빈 성씨의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효세자는 1786년 불과 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같은 해에 어머니 의빈 성씨마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에 슬퍼했던 정조는 지금의 효창공원에 모자의 묘를 조성, 이후 서삼릉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름이 효창공원인 이유는 문효세자의 무덤 이름이 효창원(孝昌園)이었던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한편 문효세자의 태실은 작년 발굴조사를 통해 땅속에 묻힌 태함을 확인한 바 있는데요. 문효세자의 태실 역시 앞선 정종, 폐비 윤씨의 태실처럼 현 서삼릉으로 옮겨진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아기씨 태실비가 온전하게 잘 남아 있기에 용문사를 방문하실 때 한번 주목해보시면 좋습니다.  

    Info. 예천 용문사

    찾아가기: 경북 예천군 용문면 용문사길 285-30(내지리 산81) 용문사
    - 대중교통 이용 비추천, 자가용 이용 추천
    문의: 054-655-1010
    사이트 : http://www.yongmunsa.kr/
    입장료 : 없음, 단 성보박물관 이용 시 성인 기준 1,000원의 입장료가 있음
    편의시설 : 무료 주차장 및 화장실 있음
    비고 : 태실 관련 이정표가 있지만, 이것만 보고 찾기는 쉽지가 않은 편임, 폐비 윤씨와 문효세자의 태실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 후 방문하실 것을 권해드림

     

       문종과 사도세자의 태실이 있는 예천 명봉사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에 위치한 명봉사(鳴鳳寺)는 문경시 동로면과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어, 사실상 대중교통으로 여행하기는 쉽지가 않은 장소입니다. 가급적이면 자가용을 이용하실 것을 권해드리는 장소로, 명봉사의 경우 계곡과 숲길이 있어 평소에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습니다. 예천 명봉사는 앞선 용문사와 마찬가지로, 두운선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해방 이후 새롭게 중건되었습니다. 이러한 명봉사 대웅전 뒤쪽 봉우리 정상에는 문종대왕 태실이 자리하고 있고, 문종대왕 태실을 지나 300m 가량 이동하면 사도세자의 태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에 소장 중인 <장조 태실도>는 명봉사와 태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예천 명봉사, 대웅전 뒤쪽 봉우리에 문종의 태실이 있다.


    ▲ 명봉사 경내에 자리한 명봉사 사적비, 본래 사도세자의 태실비로, 비신을 깎아 재활용했다.


    ▲ 명봉사 약사전과 삼성각

    본래 문종 태실의 경우 명봉사 경내에 태실비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는데요. 이후 태실지의 발굴조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을 해 둔 것입니다. 재미있는 건 현 예천읍행정복지센터(=예천읍사무소)에 문종의 태실 석물이 옮겨져 예천읍 승격 관련 글자를 새겨둔 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해당 석물은 복원 과정에서 다시 옮겨졌고, 그 자리에는 복제 석물을 세웠는데요. 때문에 지금도 문종 태실에 해당 각자가 다소 어울리지 않는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종은 우리가 생각하는 ‘태정태세문단세’의 그 문종이 맞습니다. 문종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 소생의 장자로, 그의 다른 형제들의 경우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에 모두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문종의 태실이 홀로 떨어져 명봉사에 있는 이유도 문종이 왕위 계승자이자,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종의 태실 역시 일제강점기 당시 현 서삼릉으로 옮겨졌고, 이후 태실은 파괴된 채 방치된 상태였는데요. 이후 예천군에서 태실의 발굴조사 및 복원을 한 결과 지금은 온전한 형태의 태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 문종의 태실과 태실비


    ▲ 예천읍행정복지센터(=예천읍사무소)와 문종 태실 석물의 복제품


    ▲ 문종 태실의 석물에 새겨진 각자, 1937년 예천읍 승격과 관련한 내용이다.

    한편 문종의 태실을 지나 만날 수 있는 사도세자의 태실은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요. 사도세자는 영조와 영빈 이씨 소생으로, 정조의 아버지 입니다. 우리에게는 뒤주 사건으로 유명한 임오화변(1762)을 통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는데요. 사도세자의 태실은 특별한 이유는 보통 가봉 태실의 경우 왕이나 간혹 왕비의 사례가 확인되지만, 세자이면서 태실이 가봉된 사례는 오직 사도세자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한편 사도세자의 태실과 관련해 명봉사 경내에 있는 명봉사 사적비가 사실은 사도세자의 태실비였다는 점입니다. 물론 지금은 별도로 복원을 해둔 상태지만, 명봉사 사적비와 사도세자의 태실을 함께 주목해보시면 좋습니다.

    ▲ 문종 태실을 지나 사도세자 태실을 찾아가는 길


    ▲ 사도세자의 태실과 태실비, 세자의 신분으로는 최초로 태실의 가봉이 이루어졌다. 


    ▲ 명봉사 일주문을 지나 만날 수 있는 ‘예천 명봉리 경모궁 태실 감역 각석문’

    한편 명봉사의 일주문을 지나 올라오다 보면 자연 바위가 하나 눈에 띄는데, 바로 ‘예천 명봉리 경모궁 태실 감역 각석문’입니다. 해당 각석문은 사도세자 태실의 가봉 과정의 공사 책임자를 비롯해 당시 동원된 인력 등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특히 경모궁 태실이라는 명칭은 정조가 직접 정해서 하교한 이름이기에 더욱 의미가 남다릅니다. 사실 정조의 아버지가 사도세자인건 맞지만 임오화변 이후 정조는 효장세자의 아들로 왕위에 올랐기에 법적으로 남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생부인 사도세자의 신원 회복을 위해 이렇게까지 한 것을 보면 당시의 기준인 효(孝)라는 관점에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예천 용문사와 함께 문종과 사도세자의 태실을 품고 있는 명봉사도 함께 주목해보시면 좋은 역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nfo. 예천 명봉사

    찾아가기: 경북 예천군 효자면 명봉사길 62(명봉리 501) 명봉사
    - 대중교통 비추천, 자가용 이용 추천
    문의: 054-653-1365
    사이트 : 해당없음
    입장료 : 무료
    편의시설 : 무료 주차장 및 화장실 있음
    비고 : 명봉사 일주문을 지나 사도세자의 태실과 관련한 ‘예천 명봉리 경모궁 태실 감역 각석문’이 있음, 태실까지는 이정표가 잘되어 있어 찾는데 크게 어렵지 않음

    * 현재 명봉사의 경우 코로나로 인해 출입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방문하실 때 필히 출입 가능 여부를 확인 후 방문하시면 됩니다.

     

       영천 은해사, 인종의 태실을 품고 있는 고즈넉한 사찰

    팔공산을 품고 있는 영천 은해사(銀海寺)는 영천의 대표적인 사찰로, 특히 매표소를 지나 마주하는 소나무 숲길이 인상적인 곳입니다. 그런데 본래 은해사는 현 위치가 아니었는데, 그 시작은 해안사(海眼寺)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다 지금처럼 은해사가 모습을 갖춘 건 명종 때로, 이 과정에서 중요한 유적이 바로 인종의 태실입니다. 즉 은해사는 인종 태실의 수호 사찰이었던 셈입니다. 은해사 역시 여러 보물과 국보를 품고 있는 사찰로, 그 자체가 야외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데요. 이러한 은해사를 있게 만든 인종 태실은 은해사를 지나 신일지(=운부암으로 가는 길) 뒤쪽에 있는 태실봉의 정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매표소를 지나 은해사로 가는 길, 소나무 숲길이 인상적인 곳이다. *2019년 촬영


    ▲ 영천 은해사의 전경, 현재의 은해사가 만들어진 것은 인종의 태실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2019년 촬영


    ▲ 은해사 경내에 있는 하마비, 왕실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 인종 태실의 이정표와 안내문 *2019년 촬영


    ▲ 태실봉의 정상에 자리한 인종 태실 *2019년 촬영

    산 아래 이정표가 있기에 찾기는 크게 어렵지 않은데요. 정상까지는 대략 800m를 올라가야 하는데, 아마 오늘 소개한 태실 가운데 가장 경사지고, 난이도가 있는 곳입니다. 인종의 태실은 은해사가 옮겨졌던 그 해에 태실 가봉이 이루어지게 되는데요. 이후 숙종 때에 개수가 이루어진 바 있습니다. 인종의 태실은 다른 태실들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큰 규모로, 특히 앞선 태실들과 달리 은해사에 하마비가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끕니다. 사찰에 하마비가 있다는 건 왕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로, 팔공산과 영천을 방문하실 때 은해사와 함께 인종의 태실을 주목해보셔도 좋습니다.

    Info. 영천 은해사

    찾아가기: 경북 영천시 청통면 청통로 951(치일리 480-3) 은해사
    - 대중교통 이용 시 신녕버스터미널에서 251번, 와촌1 버스를 탑승, 1시간 정도 소요
    문의: 054-335-3318
    사이트: http://www.eunhae-sa.org/
    입장료 : 어른 3,000원(단체 2,500원), 청소년, 군경 1,500원(단체 1,200원), 어린이 1,000원(단체 800원)
    편의시설 : 무료 주차장 및 화장실 있음
    비고 : 은해사에 못 미쳐 하마비가 위치하고 있으며, 인종의 태실은 은해사를 지나 운부암 방향의 신일지 뒤쪽 태실봉의 정상에 있음

     

    김희태 경북여행작가의 6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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