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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으로 떠나는 겨울여행()
· 지역 : 포항 · 최종 수정일 : 2017-12-28

포항으로 떠나는 겨울여행

비극을 희망으로 바꾸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과메기 익어가는 구룡포의 겨울
올해 포항의 겨울은 유독 춥고 혹독할 듯하다. 지진에 무너져 내린 삶이 제자리를 찾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장담할 수도 없다. 하지만 수탈의 아픔을 딛고 의연히 새로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구룡포에선 작으나마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겨울이면 고소한 과메기 냄새로 뒤덮이는 구룡포의 넉넉함 뒤에 숨은 아픈 역사를 되짚어보려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일본이 눈독 들인 천혜의 황금어장 구룡포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포
황금어장을 자랑했던 구룡포 앞바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고 하여 이름 붙은 구룡포는 바다를 끼고 있음에도 몇몇 어부 외에는 물고기를 잡는 일이 크게 없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니 구룡포 앞바다는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할 만큼 풍요로웠다. 이 같은 황금어장의 가치를 먼저 알아본 것은 안타깝게도 일본이었다. 언제부턴가 일본인 어부들이 몰래 들어와 고기를 잡아갔는데, 엄연한 밀어(密漁)였지만 이미 나라 형편이 반쯤 기운 상황이라 마을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일본인 어부들 사이에선 구룡포 앞바다에 하루 나갔다 오면 어선 세척을 살 수 있다는 말이 통했다고 한다. 1906년엔 일본어선 팔십여척이 구룡포에 자리를 잡고 막대한 양의 고등어를 강탈했는가 하면, 1908년엔 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되며 아예 어업권을 독점하기에 이른다. 어장으로서 구룡포의 전성기는 그렇게 씁쓸하게 시작되었다.

 
 명동 부럽지 않았던 구룡포의 화려한 시절
서울 명동 못지않은 번화가였던 구룡포
과거 구룡포에 자리했던 백화점

일본이 구룡포에 항구를 만들고 본격적인 어업근거지로 활용하면서 수많은 일본인들이 이 작은 마을에 밀려들었다. 1930년대 구룡포엔 일본식 가옥이 백여 채에 이르고 거주 일본인은 천이백여명에 달했다. 여관과 요릿집은 물론 치과 등 현대식 병원도 다수 들어섰고 백화점도 무려 5개나 운영됐다. 그러나 이 같은 구룡포의 화려한 시절은 마을사람들의 눈물과 땀 위에 꽃피었다. 하루아침에 풍요로운 바다를 빼앗긴 구룡포 사람들은 돌산을 깎고 흙을 퍼내는 항만 건설에 강제로 동원되었고, 이들의 희생으로 완성된 땅 위엔 일본인 수산업자 도가와 야스브로의 송덕비가 세워졌다.

 
현재 구룡포근대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하시모토 젠기치의 가옥
전형적인 일본 양식의 2층 복도
 
당시 구룡포의 모습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려면 현재 구룡포근대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하시모토 젠기치의 가옥을 둘러보길 권한다. 구룡포에 거주했던 일본인 중 막강한 재력과 인맥을 자랑했던 하시모토는 본국에서 직접 공수해 온 건축자재들로 집을 지었다. 2층으로 올린 크고 화려한 가옥에 현재는 철거되고 없지만 목욕탕과 아들들이 사용했던 건물까지 따로 있었다니 상당한 규모다. 이곳 전시관엔 1930년대 구룡포의 모습을 담은 지도 한 장이 걸려 있는데, 잘 정비된 대로변을 따라 일본인 가구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다양한 종류의 상업시설이 자리해 당시 구룡포가 얼마나 번화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하시모토 가옥의 화려한 내부
1930년대 구룡포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지도
 
 상처 대신 희망을 새기다
비극의 역사를 되새겨볼 수 있는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
 
일본인들이 흥청망청 풍족한 세월을 지내던 구룡포에 1945년 8월 15일, 천황의 항복과 함께 마을 젊은이들의 만세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일본인 거주지엔 깊은 침묵과 정적만이 감돌았다. 결국 귀환 명령이 떨어지고 다급하게 짐을 꾸려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을 구룡포 사람들은 누구 하나 해치거나 재산을 강탈하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도 구룡포 시절을 함께 보낸 일본인들은 정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해 옛 추억을 곱씹는다.
 
일본인 거주민들의 이름을 새겼던 돌기둥
시멘트가 발린 모습의 도가와 야스브로 송덕비
 
일본인들이 떠난 거리엔 다시 삶이 이어졌다. 다다미를 온돌로 고치고 도가와 야스브로의 송덕비와 일본인 거주민들의 이름이 적혀있던 돌기둥은 마을 청년들이 시멘트를 발랐다. 하지만 수탈의 흔적을 지운다고 역사마저 사라질까. 세월의 부침 속에 살아남은 50여 채의 일본가옥들을 정비해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를 꾸민 것도 그 때문이다.
 
옛 모습 그대로 운영 중인 일본식 찻집
겨울 추위를 녹여줄 따뜻한 차 한 잔
 
지금은 일본식 찻집으로, 혹은 식당과 기념품가게로 사용되고 있더라도 이 건물들이 지닌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리고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는 그저 이국적인 거리, 사진 찍기 예쁜 장소가 아니라 상처 대신 희망을 품은 공간이기도 하다. 해마다 겨울이면 쫀득한 과메기와 얼큰한 모리국수가 유혹하는 마을, 올 겨울 구룡포에서 이처럼 뜨끈한 희망을 맛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바닷바람에 잘 말린 쫀득한 과메기
얼큰한 국물이 특징인 모리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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